본문 분석
“이 일을 기억하라”(זְכָר־אֵלֶּה, 제코르 엘레)는 명령은 우상을 만드는 장면(44:9-20) 다음에 나온다. 포로지의 백성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되새기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한다. UBS 해설은 ‘이것들’이 이어지는 22절을 가리킬 가능성을 높게 보지만, 앞의 우상 조롱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소개한다.1 앞에서는 철공과 목공이 신상을 빚었고, 21절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었으니”라고 말씀하신다. 두 대목에 같은 동사가 쓰인다. 하나님께 빚어진 백성이 자기 손으로 빚은 형상 앞에 엎드릴 이유가 없다.
“너는 내 종이니라”는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이유이자 내용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을 섬길 백성으로 지으셨다.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לֹא תִנָּשֵׁנִי, 로 틴나셰니)는 약속에는 드문 동사의 특이한 수동형이 쓰인다.1 자기 길이 하나님께 숨겨졌다고 탄식하는 백성(40:27), 주께서 잊으셨다고 말하는 시온(49:14)에게 주시는 대답이다. 이스라엘에게는 기억하라 명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22절은 “내가 … 없이하였으니”(מָחִיתִי, 마히티)라는 용서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기록이나 얼룩을 닦아 지우는 동사의 완료형으로, 허물과 죄를 지우신 일을 이미 이루어진 일로 말씀하신다. “빽빽한 구름 같이”와 “안개 같이”에 쓰인 두 히브리어 명사는 모두 구름을 가리킨다. 구름이 걷히듯 이스라엘의 죄가 사라진다. 43:25에서도 하나님은 허물을 도말하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으신다.
이 선언 뒤에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שׁוּבָה אֵלַי, 슈바 엘라이)는 명령이 나온다. 근거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כִּי גְאַלְתִּיךָ, 키 게알티카)다. 구속하셨다는 동사도 완료형이므로, 돌아오라는 부름은 이미 허물을 지우고 구속하셨다는 선언에 근거한다. ‘구속하다’는 가까운 친족이 가난이나 종살이에 빠진 사람을 되찾는 책임을 가리키던 말이다. 43:1처럼 하나님이 그 책임을 친히 지시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되찾으신다. 44:19에서 자기 행위를 마음에 돌이켜 생각하지 못하던 우상 숭배자와 달리, 이스라엘은 자신을 구속하신 분께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는다.
23절은 “하늘아 노래할지어다”라며 땅속, 산과 숲, 모든 나무를 찬양에 부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우상 제작자가 신상을 깎으려고 고르던 나무들도(44:14) 여호와의 구속을 노래한다.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יִתְפָּאָר, 이트파아르)이라는 말은 13절의 우상에 새긴 ‘사람의 아름다움’과 같은 어근을 쓴다. 사람이 나무에 아름다움을 새기던 장면에 이어,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백성 안에서 영광을 나타내신다.
24절은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구속자요 모태에서 지으신 이로 소개하며 고레스에 관한 새 말씀을 연다. 이어지는 분사들은 창조하고, 점술가의 징표를 폐하며, 종의 말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잇는다. 창조를 말씀할 때 하늘을 “홀로” 펴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와 함께 한 자 없이”에 관해 NET 번역 주는 기록된 자음 본문인 크티브를 “누가 나와 함께 있었느냐”, 읽도록 제시된 크레를 “나 스스로”로 설명한다.8 두 읽기 모두 여호와만이 창조주이심을 말한다.
25절의 점치는 자들과 지혜자들은 바벨론의 주술가와 점성가를 떠올리게 한다(47:12-13). 여호와는 그들의 징표와 예측을 무너뜨리시지만, 26절에서는 자기 종의 말을 세우고 사자들의 계획을 이루신다. 이는 우상들에게 장래 일을 알려 보라고 요구하신 법정 논쟁(41:21-29; 44:7-8)을 잇는다. 여호와께서 미리 하신 말씀은 이루어진다.
26-28절에는 “이르기를”이 세 번 나오며 예루살렘, 깊음, 고레스에 대한 말씀이 이어진다. 예루살렘에는 사람이 살고 유다의 폐허는 재건될 것이다. 종의 말을 ‘세우다’와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다’에는 같은 어근이 쓰인다. 27절에서는 깊음과 강물을 마르게 하신다. 폐허를 뜻하는 말과 ‘마르라’는 명령도 같은 자음을 공유한다. 바다를 말려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51:10)이 다시 귀환의 길을 여신다. 바다에 길을 내고 광야에 새 길을 내신다는 43:16-19처럼, 바벨론 귀환은 새 출애굽으로 그려진다.
28절은 이사야서에서 처음으로 바사 왕 고레스의 이름을 밝히며 그를 “내 목자”라 부른다(לְכוֹרֶשׁ רֹעִי, 레코레쉬 로이). 이어지는 말이 고레스를 3인칭으로 가리키므로 그에게 직접 하는 말보다 그에 관한 선언으로 읽기 쉽다. 목자는 백성을 이끄는 왕에게 주던 칭호다(사무엘하 5:2; 에스겔 34장). 바벨론이 주전 587년에 무너뜨린 예루살렘과 성전을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다시 세우신다.2 ‘목자’는 44:20에서 우상 숭배자가 ‘재를 먹는다’고 할 때 쓴 동사와 연결된다. 재를 먹던 사람의 모습과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직무가 대비된다. 참 목자는 여호와이시며(40:11), 고레스는 그분이 맡기신 일을 한다.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에서 ‘기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성취하다’는 26절의 사자들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말과 같은 동사다. 28절 후반에서 예루살렘의 재건과 성전의 기초를 명하는 화자는 여호와일 수도, 고레스일 수도 있다. 개역개정의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תִּוָּסֵד, 티바세드)도 성전을 직접 부르는 말로 읽거나, 성전의 기초가 놓이리라는 3인칭 진술로 읽을 수 있다.2 여호와의 약속이 고레스의 직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은 같다.
45:1은 고레스를 직접 부르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לִמְשִׁיחוֹ לְכוֹרֶשׁ, 림시호 레코레쉬)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름 붓는 예식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권한과 과업을 주셨다는 칭호다. 오른손을 붙드시는 몸짓도 힘을 주신다는 비유다.3 이스라엘과 종의 손을 붙드신 하나님(41:13; 42:6)이 이방 왕도 붙드신다. 44:20에서 사람이 오른손에 쥔 우상은 거짓이지만, 고레스의 오른손을 붙드시는 여호와는 그를 통해 뜻을 이루신다.
고레스 앞에서 민족들이 항복하고 왕들의 허리가 풀리며 성문이 열린다. 왕들의 허리를 ‘풀다’와 문을 ‘열다’에는 같은 동사가 쓰인다. 왕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힘을 꺾고, 빗장으로 잠긴 무거운 두 짝의 성문도 여신다는 말이다.3 2절에서 하나님은 고레스보다 앞서 가셔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고 놋문과 쇠빗장을 부수겠다고 하신다. 고레스의 정복은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는 일로 설명된다.
3절에서 고레스는 정복한 나라들이 숨겨 둔 보화와 재물을 받는다. 목적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신 분이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데 있다. 43:1에서 이스라엘을 이름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고레스도 부르신다. 3-6절은 그 목적을 고레스의 앎, 종 야곱을 위한 일, 해 뜨는 곳부터 지는 곳까지 모든 이의 앎으로 넓힌다. 4절과 5절은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וְלֹא יְדַעְתָּנִי, 벨로 예다타니)를 반복한다. 고레스의 부르심은 그의 신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과 뜻이 그를 부르신 근거다. 4절의 “칭호를 주었노라”는 44:5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에 쓴 동사와 같아, 하나님이 백성과 이방 왕에게 직무와 이름을 주시는 일을 잇는다.
5절의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는 45장에 거듭 나오는 후렴이다(6, 14, 18, 21, 22절). 왕들의 허리를 푸신 하나님은 이제 고레스의 허리에 띠를 매어 힘을 입히신다. 그 결과 동쪽과 서쪽의 모든 사람이 여호와 외에 다른 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43:5에서는 동서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신다면, 45:6에서는 온 땅이 그분을 알게 된다.
7절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יוֹצֵר אוֹר וּבוֹרֵא חֹשֶׁךְ, 요체르 오르 우보레 호셰크),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עֹשֶׂה שָׁלוֹם וּבוֹרֵא רָע, 오세 샬롬 우보레 라)라는 대구로 맺는다. 창세기 1-2장의 ‘짓다, 창조하다, 행하다’가 한 절에 쓰이며, 자연과 인간의 정반대 형편을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둔다. “이 모든 일”에는 고레스의 부상도 포함된다.4 개역개정의 ‘환난’은 평안과 짝을 이루어 재난과 곤경을 뜻한다. NET는 빛과 어둠을 구원과 심판의 상징으로 읽으며, 고레스를 통한 포로의 평화와 바벨론의 재난을 예로 든다.5 아모스 3:6처럼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의 주권을 고백하는 말이다. 사람의 악행을 명하거나 정당화하는 말씀으로 읽으면 평안과 환난이라는 문맥을 잃는다. 마지막 ‘이것들’은 44:21의 ‘이 일을 기억하라’와 같은 말로 단락의 앞뒤를 잇는다.
성경신학적 통찰
출애굽기 20:2-6에서 하나님은 종살이하던 백성을 인도해 내셨다고 밝히신 뒤 다른 신과 형상을 금하신다. 이사야 44:22도 구속을 선언한 뒤 돌아오라고 부른다. 포로지의 백성은 출애굽 때와 같은 순서로 다시 부름받는다. 자기 손으로 만든 나무에게 “나를 구원하라”(44:17)고 비는 백성에게, 그들을 지으신 여호와만 구원하실 수 있음을 일깨운다. 45:5의 다른 신이 없다는 선언은 시내산 계명을 다시 붙들 근거다.
신명기 32장은 여수룬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잊었다고 책망한다(15, 18절). 이사야도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부르지만(44:2),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44:21). 언약을 깬 백성을 하나님이 붙드신다. 신명기 32:39의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라는 선언은 죽임과 살림, 상함과 나음을 한 분 하나님께 돌린다. 이사야 45:5-7도 포로기의 상처와 회복을 그분의 다스림 아래 둔다.
창세기 1:1-5에서 빛을 내신 하나님은 이사야 45:7에서 어둠의 창조주로도 고백된다. 45:18은 땅을 사람이 거주하도록 지으셨다고 말하며, 44:26은 예루살렘에 다시 사람이 살리라고 약속한다. 창조주께서 폐허를 사람이 살 곳으로 회복하신다. 예레미야 10:11-16도 천지를 짓지 않은 신들은 망할 것이며 여호와는 만물의 조성자이시라고 말한다. 두 선지자는 사람이 다듬은 목상과 창조주를 대비한다. 하늘을 펴신 분이 고레스 앞의 성문도 여실 수 있다.
레위기 25장과 룻기에서 기업 무를 자는 가난해진 친족의 재산과 자유를 되찾을 책임을 진다. 출애굽기 6:6과 15:13에서는 하나님이 종살이하는 백성을 구속하고 인도하신다. 이사야 51:10-11은 바다를 말려 구속받은 백성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신다고 노래한다. 44:22-23도 구속, 돌아옴, 찬양으로 이어진다. 45:13은 고레스가 포로를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고 한다. 백성의 귀환은 이방 왕에게 값을 치르는 거래가 아니며, 뒤의 종의 노래는 죄 사함을 위해 허물을 담당하는 종의 고난을 말한다.
‘목자’와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윗의 왕권에 사용된 칭호다(사무엘상 16:13; 사무엘하 5:2). 에스겔 34장은 자기만 먹이는 목자들을 책망하며 하나님이 직접 양 떼를 찾고 다윗을 한 목자로 세우시리라고 약속한다. 다윗 왕조가 무너진 때에 고레스에게 이 칭호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백성을 위해 일하심을 뜻한다.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도 여호와의 종이라 불렀다(25:9; 27:6). 심판과 회복에 이방 왕을 쓰시는 것이다. 고레스가 다윗의 언약을 계승하는 것은 아니며, 사무엘하 7장과 이사야 9장, 11장이 약속한 영원한 왕권은 그에게서 완성되지 않는다.
에스라 1:1-4에서 하나님은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포로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하게 하신다. 바벨론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던 백성(시편 137편)에게 귀환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돌아온 공동체는 바사의 지배와 재건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회복은 실제였으나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에 달려 있었다. 40:2의 사죄 선언은 44:22의 용서와 55:7의 돌아오라는 부름으로 이어진다. 44:26에서 종의 말을 세우시는 하나님은 45:23과 55:11에서 자신의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룬다고 하신다.
아모스 3:6, 욥기 2:10, 예레미야애가 3:37-38도 재앙과 복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둔다. 그러나 욥의 고난을 그의 죄 탓으로 설명한 친구들은 책망받으며, 예레미야애가 3장은 하나님이 사람을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이사야 45:7은 바벨론의 몰락과 포로의 해방이라는 역사 속에서 들린다. 고난받는 백성은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탄식하고 회복을 기다린다.
아브람을 통해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던 뜻(창세기 12:1-3)은 이사야 45:4-6의 목적에도 나타난다. 야곱을 위한 고레스의 부르심은 온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데 이른다. 45:14의 민족들은 여호와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다고 고백하고, 22절에서는 땅의 모든 끝이 돌아와 구원받으라는 초대를 듣는다. UBS 해설은 이를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민족으로 보며, 특히 고레스가 공격한 나라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6 49:6은 종의 사명을 땅 끝까지 이르는 구원으로 밝힌다.
기독론적 해석
이 단락에서 종은 야곱 이스라엘이고, 기름 부음 받은 자는 고레스다(44:21; 45:1, 4). 고레스는 귀환의 길을 열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허물을 지우고 구속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44:22). 종 이스라엘도 보지 못하는 종이라는 책망을 듣는다(42:19). 49장 이후의 종은 야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이방의 빛이 되어 땅 끝에 구원을 이르게 한다(49:5-6). 고레스의 정치적 해방과 이스라엘의 사명은 이 종의 사역과 구별하면서 연결하여 읽어야 한다.
이사야 61:1의 화자는 여호와의 영과 기름 부음을 받아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고 성취를 선언하신다(누가복음 4:16-21). 사도행전 4:24-28의 교회는 창조주께 기도하며 예수를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이라 부른다. 고레스와 이스라엘에게 나뉘었던 호칭이 예수께 모인다. 헤롯과 빌라도의 대적도 하나님의 구원 뜻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른 채 정복으로 포로를 놓았지만, 예수는 아버지께 순종하여 대적들의 손에 자신을 내주셨다.
고레스에게 위임된 목자의 직무는 포로 귀환을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예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다. 여호와가 친히 양 떼를 모으시겠다는 이사야 40:11과 에스겔 34장의 약속을 이루시는 목자다. 이사야 53:6은 그릇 행한 양들의 죄악을 종이 담당했다고 말한다. 예수는 양 떼를 죄에서 되찾으시는 목자이자 대속의 종이시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하는 백성은 이 목자의 돌봄을 의지한다.
이사야 53:5, 11-12는 종이 백성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여 평화를 이루는 길을 밝힌다. 44:22의 허물 지움과 45:7의 평안을 신약은 예수의 구속에서 읽는다. 예수는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시고(마가복음 10:45), 자기 피로 백성을 죄에서 해방하신다(요한계시록 1:5). 하나님의 아들은 혈과 육을 지녀 우리의 친족이 되시고, 죽음으로 종노릇하던 사람들을 놓으셨다(히브리서 2:14-15). 구속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지만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주신 구원이다.
용서의 선언 뒤에 돌아오라는 명령이 오는 순서는 고린도후서 5:18-21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으므로 사도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한다. 죄를 모르신 이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신 것이 그 근거다. 같은 장은 그리스도 안의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부른다(17절).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지으신다. 바울은 빛을 명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추셨다고 말한다(4:6). 이사야 45:7의 빛과 어둠의 창조주를 신약은 새 창조의 빛을 주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십자가의 어둠(마가복음 15:33)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다. 사도행전 4:28의 교회는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고 고백하며, 이사야 53:5는 종의 징계로 백성이 평화를 누린다고 말한다. 헤롯과 빌라도의 악행에 대한 책임은 사라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일의 결과까지 다스려 구원하신다. 부활은 그 어둠 가운데서 이루신 생명의 응답이다. 이사야에서 고레스의 부상이 바벨론의 재난과 포로의 평화가 되었다면, 십자가와 부활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꺾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들에게 평화를 준다.
44:24는 여호와께서 홀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신약은 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졌고(요한복음 1:3),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고백한다(골로새서 1:16). 히브리서 1:10-12는 땅의 기초를 두신 주를 찬송하는 시편 102편을 아들에게 적용한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정체 안에서 고백된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오셔서 백성을 구속하신다.
45:23에서 모든 무릎과 혀는 여호와께 경배와 충성을 드린다.7 로마서 14:11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대에 적용하고, 빌립보서 2:10-11은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 돌리리라고 말한다. 여호와만 하나님이시라는 고백 안에서 예수께 경배한다. 열국을 항복시킨 고레스와 달리 예수는 죽기까지 낮아지셔서 높임받으셨다. 이 그리스도를 통해 땅 끝의 민족들이 돌아와 구원받으라는 부름(이사야 45:22)을 듣는다.
현대적 적용
하나님은 허물을 지우셨다고 말씀하신 뒤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죄책감 때문에 자격을 갖출 때까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미루는 사람에게, 돌아갈 근거는 이미 주신 용서다. 용서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의지하여 실제 잘못을 버린다. 사죄의 선언과 회개의 요구를 떼어 놓으면 이 부르심의 순서를 잃는다.
자기가 만든 것에게 구원을 구하는 우상 숭배는 소유와 평판과 성과에서 생명의 안전을 얻으려는 태도에도 나타난다. 자기 손에 쥔 것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면 그것이 거짓인지 돌이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44:19-20).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이 구속자라는 고백은, 손에 쥔 것보다 그분의 말씀과 약속에 삶을 맡기도록 요구한다.
하나님이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는 약속은 포로지에서 주어졌다. 고향과 자유를 잃은 현실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다. 오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잊으셨다고 탄식하는 성도도 이 약속을 붙들 수 있다. 점술가의 확신에 기대어 미래를 확보하려 할 때에는, 예측을 무너뜨리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고레스에게 주어진 직무를 오늘의 특정 정치 지도자에게 그대로 붙여서는 안 된다. 그 칭호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주셨으며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목적에 한정되어 있었다. 어떤 권력자가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모든 행위를 신성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을 모르는 권력 아래서도 교회는 창조주께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사도행전 4장의 교회가 그랬듯, 권력의 위협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폐하지 못한다.
고레스의 승리와 재물에는 야곱의 회복과 온 땅이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권한과 성공을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쓰는 사람은 이 목적과 어긋난다. 신자는 맡은 권한으로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고레스도 목적을 위해 부름받은 도구였으므로 권력과 성공 자체가 구원이 될 수 없다.
평안과 환난을 다스리신다는 말씀은 포로에게 귀환의 소망을 주었다. 이 말씀을 재난당한 사람의 죄를 판정하는 근거로 쓰면 욥의 친구들과 같은 잘못을 범한다. 고통의 이유를 다 안다고 말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하나님의 주권을 핑계로 악행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고난 중에도 탄식하고 회복을 구하며 선하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할 수 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고백은 땅 끝을 향한 구원의 초대로 이어진다(45:22). 교회는 다른 민족을 낮추거나 정치적 지배를 확대하여 이 부름에 응할 수 없다.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민족이 같은 구원을 받도록 섬긴다. 하늘과 땅과 숲을 찬양에 부르신 하나님은 구속받은 백성 가운데 자기 영광을 나타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