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이사야 54장은 고난받는 종의 노래(52:13-53:12)에 이어 시온에게 기뻐 외치라고 명한다. BHS의 단락 표지는 1-8절의 아내를 다시 부르시는 약속, 9-10절의 노아 때 맹세에 견준 언약, 11-17절의 성을 다시 세우시는 약속을 구분한다. “노래할지어다”(רָנִּי, 론니)는 여인에게 하는 명령이다. Graham S. Ogden과 Jan Sterk의 UBS 해설은 1절의 세 명령이 기쁨의 외침을 촉구한다고 설명한다.2 아이를 낳지도 산고를 겪지도 못한 여인에게 많은 자녀를 약속하신다.

“홀로 된 여인”(שׁוֹמֵמָה, 쇼메마)은 황폐한 자라는 뜻도 지닌다. 3절의 황폐한 성읍과 같은 어근이어서 여인의 고립과 성의 폐허가 겹친다.1 UBS는 홀로 된 여인을 포로 이후 예루살렘, 남편 있는 여인을 포로 이전 예루살렘으로 보며 앞으로 인구가 더 많아지리라는 대조로 읽는다. 49장의 시온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이고 여기서는 출산하지 못한 여인이지만, 두 비유 모두 무너진 성의 회복을 가리킨다.2 개인에게 주시는 출산 약속이 아니다.

장막터와 휘장을 넓히고 줄을 늘이며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명령은 많은 자녀를 맞을 준비다(2절). “널리 펴되”의 원문은 “그들이 네 처소의 휘장을 펴게 하라”이고, 개역개정은 시온에게 주는 직접 명령으로 풀었다. 자손이 좌우로 퍼지고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에 다시 살기 때문이다(3절). NET는 “얻다”를 정복으로 옮기면서 “차지하다”라는 뜻도 제시한다.1 신명기의 땅을 차지하는 언어가 주민을 되찾을 시온에게 적용된다.

4절에는 수치와 치욕의 말이 거듭 나온다. “놀라지 말라”도 갑작스러운 놀람보다 모욕당해 얼굴을 들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불임으로 멸시받던 라헬과 한나(창 30:23; 삼상 1:6), 율법이 보호한 과부(신 24:17-21)의 처지가 시온의 굴욕에 겹친다. NET는 6-8절을 근거로 여기의 과부가 죽음뿐 아니라 버림받아 남편을 잃은 여인도 뜻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1 시온의 남편은 살아 계시며 다시 부르신다. 젊었을 때의 수치가 어느 역사적 시기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는다.

5절의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כִּי בֹעֲלַיִךְ עֹשַׂיִךְ, 키 보알라이크 오사이크)에서 두 칭호는 복수형으로 쓰였지만 단수 동사와 함께 한 분을 가리킨다. UBS는 남편을 뜻하는 낱말을 이 문맥에서 가나안 신 바알의 이름과 구별한다.3 만군의 여호와는 시온을 되찾으실 가까운 친족 같은 구속자이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시며 온 땅의 하나님이시다. 이 칭호들은 약속을 이루실 책임과 능력을 강조한다.3

하나님은 버림받아 근심하는 젊은 날의 아내를 다시 부르신다(6절). “버림을 받아”와 “마음에 근심하는”은 비슷한 소리로 상실과 상처를 연결한다. “너를 부르시되”는 완료형이지만 개역개정은 앞으로 이루실 일로 옮기고 NET는 “다시 불러들이심”으로 풀이한다.1 50:1은 내보냄의 원인을 백성의 죄에서 찾되 영원히 관계를 끊는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 이후 관계를 되찾으신다.

7-8절은 작은 순간의 버림과 큰 긍휼, 잠시 가린 얼굴과 영원한 자비를 대조한다. 하나님은 실제로 버리셨고 진노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진노가 마지막은 아니다. “넘치는 진노”(בְּשֶׁצֶף קֶצֶף, 베셰체프 케체프)는 소리의 반복으로 격렬함을 표현한다. NET는 앞 낱말을 홍수의 변형으로 보는 사전 견해와 힘에 관련짓는 견해를 소개한다. 홍수로 읽으면 9절의 노아 이야기와 이어진다. “영원한 자비”(וּבְחֶסֶד עוֹלָם, 우베헤세드 올람)는 변함없는 언약의 사랑이다.1 7-10절에 반복되는 긍휼은 49:15의 어머니보다 확실한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가 다시 땅을 덮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신 것처럼 시온에게 다시 진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신다(9절). 창세기 9장은 이를 언약이라 부르며 무지개를 증거로 삼는다. 이사야는 그 약속을 맹세로 읽어 시온에게 적용한다. 8절의 진노를 같은 어근으로 되받아, 다시 쏟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산이 떠나고 언덕이 흔들려도 자비는 떠나지 않고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10절). 같은 동사들을 긍정과 부정으로 반복하여 대조한다. “화평의 언약”(וּבְרִית שְׁלוֹמִי, 우베리트 셸로미)을 NET는 우정의 언약으로 옮기며 원문이 평화라고 밝힌다.1 관계의 회복과 온전한 삶을 포괄하는 이 평안은 13절에서 자녀들의 큰 평안으로 나타난다.

11절에서 버림받은 아내는 폭풍에 시달려 위로받지 못한 성으로 그려진다. “안위를 받지 못한”은 40:1의 “위로하라”를 되울린다. 하나님은 직접 기초와 성벽과 성문을 보석으로 다시 세우신다. “성벽”(שִׁמְשֹׁתַיִךְ, 쉼쇼타이크)은 해를 받아 빛나는 성의 윗부분을 가리킬 수 있으나 정확한 부위는 불분명하다. 보석의 정체도 확정하기 어렵다. NET는 “홍보석”을 보석 또는 루비로 설명하고 “석류석”에 해당하는 말(אֶקְדָּח, 에크다흐)은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온다고 밝힌다.1 폐허는 아름답고 견고한 성이 된다.

회복된 성의 자녀들은 모두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자들이다(13절). 해당 말(לִמּוּדֵי, 림무데)은 50:4에서 종이 하나님께 배운 “학자들”과 같은 낱말이다. 종이 받은 가르침을 자녀들이 받으며 큰 평안을 누린다. NET는 여호와를 따르는 자들로 옮긴다.1 시온의 회복은 인구 증가와 함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의 회복이다.

“공의로 설 것”의 공의(בִּצְדָקָה, 비츠다카)는 도시의 정의를 뜻할 수도 있지만, NET는 구원의 문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또는 옹호를 택한다. 학대에서 멀리 있으라는 명령도 확실한 약속을 표현하는 수사적 명령으로 풀이한다.1 시온은 강자의 착취와 공포에서 벗어나 굳게 선다.

15절은 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았다고 밝힌다. 이전 심판에서 앗수르가 진노의 막대기였던 것(10:5)과 달리 새 공격자는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지 못한다. 대적은 넘어지며, NET는 이를 패배 또는 항복으로 풀이한다.1 16절은 무기를 만드는 장인과 파괴하는 자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두 번 선언한다. 어떤 무력도 창조주의 통치 밖에 있지 않다.

17절에서 무기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고발하는 혀는 오히려 시온에게 정죄받는다.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의 원문은 “네가 정죄하리라”라는 능동적인 판결이다.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를 NET는 하나님이 주시는 옹호로 풀이한다.1 분쟁은 “나로 말미암지” 않지만 공의는 “내게서” 나온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다. 40-53장의 단수 종에서 여기의 복수 종들로 이어지는 흐름은 53:10에서 고난받은 종이 씨를 본다는 약속과 연결된다.

성경신학적 통찰

시온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탄식했지만 하나님은 어머니보다 확실히 기억하며 손바닥에 새겼다고 응답하셨다(49:14-16). 돌아온 자녀들이 좁다고 외치는 49:20은 54:2의 넓어질 장막을 준비한다. 40:1-2에서 시작된 위로는 49:13과 52:9의 노래, 51:11의 귀환으로 이어진다. 애가 1:2, 9의 위로받지 못한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친히 회복하신다.

50:1의 이혼 증서에 대한 질문, 54:6-7의 다시 부르심, 62:4-5의 신부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깨어진 혼인의 회복을 그린다. 신명기 24:1-4와 예레미야 3:8은 이혼 증서의 심각성을 알려 준다. 호세아 2:14-23도 처음 사랑을 되찾고 공의와 긍휼로 영원히 관계를 맺으며 무기를 꺾는 언약을 약속한다. UBS는 이사야 54:5의 남편을 호세아 2:16과 비교한다.3

출산하지 못한 사래와 리브가와 라헬, 아이를 얻어 노래한 한나의 역사는 약속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어졌음을 증언한다(창 11:30; 25:21; 29:31; 삼상 2:5). 이사야 51:2-3은 사라를 기억하라고 한 뒤 시온의 황폐를 위로하신다. 54장의 많은 자녀도 이 약속 안에 있다. 이사야 56:3-5는 자녀 없는 사람에게 자녀보다 나은 영원한 이름을 약속하여, 하나님의 가족 안의 자리를 생물학적 출산에 한정하지 않는다.

노아에게 세운 언약(창 9:8-17)은 심판 이후 하나님이 스스로 진노를 거두시는 약속이다. 시온은 오랫동안 지켜진 그 약속으로 자신에게 주신 맹세도 신뢰할 수 있다. 에스겔 34:25와 37:26의 화평의 언약은 땅의 안전과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한다. 이사야 55:3의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54:8, 10의 자비와 같은 히브리어 명사로, 시온의 회복과 다윗의 약속을 연결한다.

예레미야 31:31-37의 새 언약은 법을 마음에 기록하고 죄를 사하여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는 시온의 모든 자녀가 여호와께 배운다는 54:13과 통한다. 해와 달과 창조 질서가 언약을 보증하듯 54:10의 산과 언덕도 사랑의 확실함을 드러낸다. 창조주를 잊어 학대자를 두려워했던 백성(51:13)은 무기 장인도 지으신 하나님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54:16).

종들의 기업은 이사야 65:8-15의 남겨 두신 종들이 얻을 땅과 기쁨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여호와를 버린 자들과 구별되며, 56:3-8에서는 언약을 붙든 이방인도 하나님의 집에 참여한다. 보석으로 세워진 시온은 65:17-19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즐거운 예루살렘으로 이어진다. 회복의 끝에는 울음이 사라진 하나님의 성이 있다.

기독론적 해석

갈라디아서 4:27은 이사야 54:1을 직접 인용한다. 바울은 하갈과 “지금 있는 예루살렘”, 자유 있는 여자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대비하며 후자를 우리 어머니라 부른다(4:24-26). 사라와 시온을 잇는 배경은 이사야 51:2-3에도 있다. 갈라디아 성도는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이며 성령을 따라 난 사람들이다(갈 4:28-29). 그리스도께 속하여 아브라함의 씨가 되고 유업을 잇는다는 3:16, 29의 논증이 시온의 많은 자녀를 그리스도 안에서 읽게 한다.

53장의 종에게 닥친 버림과 얼굴 가림(53:3)은 54:7-8의 시온이 겪은 고통과 겹친다. 종의 징계로 누린 평화(53:5)가 화평의 언약과 자녀들의 큰 평안으로 이어진다(54:10, 13). 교회는 십자가에서 버림받음을 부르짖으신 예수(막 15:34)에게서 그 종을 읽고, 그의 고난으로 시온에게 화평이 주어졌다고 고백한다.

종이 씨를 보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53:10-11 뒤에 54:17의 종들이 나타난다. 빌립은 고난받는 종의 말씀에서 예수의 복음을 설명했다(행 8:32-35). 54:17의 공의는 문맥상 대적의 송사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옹호하심이다.1 이는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누가 자신을 정죄하겠느냐는 종의 고백(50:8-9)과 연결된다. 로마서 8:33-34은 죽고 부활하여 간구하시는 그리스도를 근거로 같은 확신을 말한다. 이사야의 옹호는 그 문맥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이 주는 확신과 이어진다.

시온의 남편이신 하나님은 신약에서 신랑 예수의 사역으로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을 신랑으로 부르셨고(막 2:19-20), 세례 요한은 그의 음성을 기뻐하는 친구라 했다(요 3:29).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시고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세우신다(엡 5:25-27). 버림받은 아내를 다시 부르는 이사야의 남편처럼 예수는 죄인들을 잔치에 부르신다(막 2:15-17).

예수는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고(눅 22:20), 히브리서 8:6-13은 예레미야의 약속으로 그의 중보를 설명한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롬 5:1), 유대인과 이방인은 한 새 사람이 된다(엡 2:14-17). 이사야 54:3의 열방을 얻을 자녀에 대한 약속은 신약에서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자녀가 되는 일과 연결된다.

요한복음 6:45은 이사야 54:13을 가리켜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고 인용한다. 예수는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이 자신에게 온다고 설명하시며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리겠다고 약속하신다(6:44, 48, 51). 데살로니가전서 4:9의 성도도 하나님께 배워 서로 사랑한다. 배움의 열매는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믿음과 형제 사랑이다.

가까운 친족처럼 되찾으시는 구속자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예수의 사역에 이어진다(막 10:45; 벧전 1:18-19). 하나님이 세우실 성은 그리스도를 기초와 모퉁잇돌로 삼아 지어지는 교회와도 연결된다(고전 3:11; 엡 2:20-22; 벧전 2:5). 이 연결의 끝에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이 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신부와 보석의 성을 한 환상에 모은다. 성은 어린 양의 아내이며(21:2, 9) 기초는 보석으로 꾸며진다(21:19-20).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고 어린 양이 등불이시다(21:22-23). 아브라함이 기다린 하나님이 지으실 성(히 11:10)에서 구속받은 백성은 더 이상 죽음과 애통을 겪지 않는다(계 21:3-4). 폭풍에 시달린 시온의 회복은 어린 양의 혼인과 영원한 임재의 기쁨에 이른다(19:7).

현대적 적용

하나님은 눈앞의 폐허보다 자신의 약속을 근거로 시온에게 노래하라고 하신다. 약속을 믿는 찬양은 탄식을 지우지 않는다. 시온의 “나를 버리셨다”는 탄식을 기록한 이사야서는 그 고통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도 선포한다. 수치를 잊게 하신다는 약속을 피해자에게 과거를 말하지 말라는 요구로 바꾸면, 상처 입은 시온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거스른다.

불임 여인은 황폐한 시온의 비유다. 이를 개인의 출산 보장으로 말하거나 자녀 없는 처지를 믿음 부족과 연결할 수 없다. 자녀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한 이름을 주신다(56:3-5).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존귀함은 혼인 여부나 출산에 달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내린 진노를 인정하시며 영원한 자비를 약속하신다. 죄를 범한 사람은 그 자비를 의지해 돌아가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과 사고를 이 포로기의 심판과 동일시할 근거는 없다. 버림받은 아내의 비유도 특정 혼인 분쟁의 법적 결론을 정하거나 상처 입은 이에게 관계 회복을 강요하는 규정이 아니다. 본문의 확신은 하나님이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데 있다.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옹호다. 사업 성공을 보장하거나 지도자에게 제기된 정당한 비판을 막아 주는 말이 아니다. 여호와께 배우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학대와 공포에서 벗어날 시온의 소망을 말하면서 학대를 숨기거나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을 침묵시킬 수 없다.

회복된 시온의 모든 자녀는 하나님께 배운다. 아버지께 배운 사람은 그리스도께 오고 서로 사랑한다(요 6:45; 살전 4:9). 시온의 넓어진 장막과 열방을 얻는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는 소망이다. 민족이나 교회의 세력 확장을 정당화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을 받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그분을 섬기는 삶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