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이사야 55장은 시온의 회복을 노래한 54장 뒤에서 포로 공동체를 부른다. 첫머리의 “오호라”(הוֹי, 호이)는 여기서 주의를 끄는 외침이며 안타까움도 담길 수 있다.1 목마르고 돈 없는 사람들이 물과 포도주와 젖을 사도록 초청받는다. ‘사라’는 말에 ‘돈 없이, 값 없이’가 붙는 역설이다. NET은 보통 값을 내야 얻는 것을 거저 가져가라는 놀라운 제안으로 풀이한다.1 생존에 필요한 물과 넉넉한 식탁의 포도주와 젖은 굶주린 백성에게 약속된 풍성한 삶을 그린다.
2절의 “은을 달아 주며”는 은을 저울에 달아 값을 치르던 거래 방식이다. 1절의 ‘돈’과 2절의 ‘은’은 같은 히브리어다. 사람들은 수고해서 번 소득을 양식이 되지 못하고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에 쓴다. 하나님은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라고 부르신다. 같은 동사를 거듭하는 표현은 청종을 강조한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먹을 ‘좋은 것’은 용서와 새 언약 관계와 백성의 영예를 가리킨다.1 음식을 먹으라는 초청은 말씀을 들어 생명을 얻으라는 부름으로 이어진다.
3절에서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나아와 들으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고 약속하신다. Graham S. Ogden과 Jan Sterk의 UBS 해설은 귀를 기울임을 순종으로, 산다는 말을 더 오래 살거나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뜻으로 풀이한다.2 개역개정의 ‘영혼’에 해당하는 말은 2절의 “너희 자신들”과 같으며 청중 자신을 가리킨다. NET도 신명기 30장의 언약적 번영과 민족의 안전을 배경으로 읽는다.1 몸과 분리된 내면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백성의 삶이 회복된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백성과 영원한 언약을 맺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חַסְדֵי דָוִד הַנֶּאֱמָנִים, 하스데 다비드 한네에마님)를 주겠다고 하신다. ‘은혜’는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가리킨다. 히브리어의 ‘다윗의’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보이신 사랑이나 다윗이 보인 신실함으로 읽을 수 있다. NET은 다윗 언약이 온 백성에게 이전된다는 견해, 그 약속이 확대·성취된다는 견해, 새 언약이 다윗 언약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견해, 다윗의 신실함이 약속의 근거라는 견해를 소개한다. 4-5절의 비교에 근거하여 셋째를 택한다.1 UBS는 하나님이 다윗 왕조에 거듭 베푸신 사랑으로 읽으며 이 구절을 왕조의 정치적 복귀 약속과 구별한다.2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다윗 왕 기대와 다른 강조점이다. 이 해석들 가운데 앞의 세 견해와 UBS는 다윗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백성과 맺는 언약에 연결됨을 인정한다. 54:8의 영원한 자비가 55:3의 영원한 언약으로 이어진다.
4절의 ‘그’는 만민의 증인과 인도자와 명령자로 세움받은 다윗이다. 5절의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다윗이 맡았던 증인의 역할을 이제 백성이 이어받아 알지 못하던 나라를 부르고, 그들을 모르던 나라들이 달려온다. 원문은 단수 ‘나라’와 복수 동사를 결합하여 여러 민족을 포괄한다.1 서로 알지 못했던 이들이 만나는 까닭은 포로 백성을 영화롭게 하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 있다.
6-7절은 가까이 오신 하나님을 지금 찾으라고 부른다. “만날 만한 때에”(בְּהִמָּצְאוֹ, 베힘마체오)는 NET의 풀이대로 하나님이 자신을 찾도록 허락하시는 때다.1 그분을 찾는 일은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는 회개다. 예언자는 “우리 하나님”이라 부르며 청중과 같은 자리에서 너그러운 용서를 호소한다. 이는 포로 가운데서 돌아와 하나님을 찾으면 긍휼을 얻으리라는 신명기 4:25-31, 30:1-10, 열왕기상 8:46-53의 약속과 이어진다.1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와 포로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회복이 연결된다.
8-9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7절의 악한 생각과 길에 맞세운다. 8절의 ‘이는’은 7절의 용서를 뒷받침하며 ‘참으로’라는 강조로 읽을 수도 있다. 원문은 ‘내 생각, 너희 생각’과 ‘너희 길, 내 길’을 교차 배열한다. UBS 해설은 사람이 계획을 이루지 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뜻을 이루신다는 차이, 백성을 용서하고 돌아오게 하실 능력을 강조한다.3 하늘과 땅의 거리는 회복의 뜻을 신뢰하게 하는 비유다. 사람의 제한된 계산으로 하나님의 너그러운 용서와 구원을 재단할 수 없다.
10-11절은 비와 눈이 땅에 생명을 주듯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한 문장이다.1 비에 의존해 농사짓는 땅에서 하늘의 물은 씨와 양식을 낳는다. 2절에서는 사람이 수고하고도 양식을 얻지 못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양식을 주신다. “헛되이”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뜻한다. 7절에서 백성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고, 같은 동사로 표현된 11절의 말씀은 일을 이루지 않은 채 돌아오지 않는다. 보냄받은 사자처럼 그 뜻을 이루는 ‘말’은 이 문맥의 용서와 귀환 약속이다.1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면 백성도 포로지에서 기쁨으로 나아가 평안히 인도받는다. 11-12절의 ‘나감’은 같은 동사다. 산과 언덕은 노래하고 나무는 손뼉을 치며, 가시나무와 찔레 대신 잣나무와 화석류가 자란다. “여호와의 기념”은 직역하면 여호와께 ‘이름’이 된다는 말이다. NET은 56:5에서 ‘이름’이 ‘기념물’과 짝지어진 용례를 근거로 기념비로 옮긴다.1 UBS도 56:5의 끊어지지 않을 영원한 이름과 55:13의 표현이 매우 비슷함을 지적한다.4 3절의 언약을 ‘맺다’와 13절의 표징이 ‘끊어지다’는 같은 어근이며, 두 절의 ‘영원한’도 같다.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회복이 끊어지지 않을 표징으로 남는다.
성경신학적 통찰
UBS 해설은 영원한 언약이 노아, 아브라함, 다윗 가문을 거쳐 이사야 5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는 흐름을 설명한다.2 창세기 9:8-17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후손,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우고 무지개를 표로 주셨다. 이사야 54:9-10은 그 맹세를 불러와 산과 언덕이 떠나도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산과 언덕이 55:12에서는 귀환을 노래한다. 노아 언약의 무지개처럼 55:13의 회복된 나무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리는 표가 된다.
이사야 41:17-20은 광야에 물을 내고 잣나무와 화석류를 심어 사람들이 여호와의 손을 알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44:3은 목마른 자에게 주는 물을 자손에게 부을 영과 복에 연결한다. 48:20-21은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옛 출애굽의 반석 물에 잇고, 52:11-12는 하나님이 앞뒤에서 보호하시는 귀환을 말한다. 55:1, 12-13의 물과 나무, 나아감은 이 새 출애굽의 약속을 이어받는다. 처음 출애굽의 광야에서처럼 하나님은 돌아오는 백성에게 양식을 거저 주신다.
신명기 30:1-20은 흩어진 백성이 돌아와 말씀을 들으면 긍휼을 얻어 땅으로 돌아오고 생명을 얻는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은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고 말씀을 입과 마음에 가까이 두신다. 땅에 들어가기 전 경고를 들었던 백성은 이제 그 저주를 겪은 뒤 용서를 듣는다. 이사야 55장의 들음과 생명, 돌아옴과 긍휼은 그 약속을 포로들에게 적용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까이 오셔서 그 말씀을 이루신다.
이사야 40:1-11은 죄 사함과 광야의 길, 영원한 말씀을 선포하여 40-55장의 위로를 연다. 55장은 용서와 귀환, 뜻을 이루는 말씀으로 그 선포에 응답한다. 40장에서 낮아져야 했던 산과 언덕은 55장에서 노래한다. 49:8-13에서는 종이 백성의 언약이 되어 목마르지 않을 귀환을 이루며 산들이 기뻐한다. 종을 통해 회복된 백성은 55:5에서 열방을 부른다.
52:13-53:12의 종은 백성의 죄악을 담당하고 평화와 나음을 이루며 범죄자를 위해 기도한다. 그 뒤 54장은 시온의 자녀와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을 약속하고, 55장은 값없는 식탁을 연다. 55장 자체는 식탁의 값을 누가 치렀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이사야서의 이 순서에서 값없는 용서와 생명은 종의 대속 사역이 맺은 열매로 읽힌다.
사무엘하 7:8-16과 23:5는 다윗 가문과 맺은 언약을 말한다. 왕조가 무너진 뒤 시편 89:49는 다윗에게 맹세한 인자하심이 어디 있느냐고 탄식한다. 이사야 55:3-5는 그 사랑을 백성에게 주시고 증인의 역할을 맡기신다는 약속이다. UBS는 이를 다윗 왕의 귀환을 기대한 예레미야 33:17, 에스겔 34:23과 구별한다.2 다윗 계열의 왕과 백성 전체에 미치는 다윗의 은혜라는 두 강조는 신약에서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 연결된다.
예레미야 31:12, 14, 31-34도 포로 백성의 배부름과 새 언약과 죄 용서를 연결한다. 마음에 새긴 법을 강조하는 예레미야와 다윗의 은혜와 열방을 강조하는 이사야는 언약을 깨뜨린 백성에게 먼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이사야 56:1-8은 그 초청을 이방인과 고자에게 구체화한다. 고자에게 주시는 끊어지지 않을 영원한 이름은 55:13의 표징을 되울리며,4 이방인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인도된다. 언약 밖으로 밀려날까 두려워하던 사람들도 하나님께 속한 이름을 받는다.
기독론적 해석
사도행전 13:23, 32-39에서 바울은 다윗의 후손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선포하면서 이사야 55:3을 직접 인용한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라는 표현은 칠십인역을 따른다. 다윗은 죽어 썩었으나 예수는 다시 썩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다윗의 자손을 통해 그 확실한 은혜를 백성에게 주신다. 바울은 곧바로 예수를 힘입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선포하고, 이사야 49:6을 인용하여 이방인을 향한다(행 13:46-48). 이사야 55장의 용서와 열방 초청이 그 설교에서 이어진다.
다윗과 그 왕조, 이스라엘 백성은 죄와 실패 때문에 증인과 인도자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요한계시록 1:5는 예수를 충성된 증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 부른다. 이사야 55:4의 직접 인용은 아니지만, 다윗이 다 이루지 못한 증언과 통치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고백한다. 약속의 확실함은 인간 왕조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다.
값없는 초청은 받는 사람이 값을 내지 않는 은혜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어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고(고후 8:9),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죄를 돌리지 않고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19, 21). 이사야 53장의 대속과 55장의 용서가 예수의 십자가에서 만난다. 죄를 알지 못하신 분이 죄인을 대신하셨기에 죄 사함을 값없이 받는다.
요한복음 6:26-35에서 예수는 썩을 양식을 위한 수고를 돌이켜 영생하는 양식을 구하라 하시며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밝히신다. 자신에게 오는 이는 주리지 않고 믿는 이는 목마르지 않는다고 약속하신다.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는 이사야의 초청이 예수께 나아오라는 부름으로 이어진다. 베드로는 그분께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한다(요 6:68). 누가복음 14:15-24의 큰 잔치는 값을 치를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마지막 만찬에서는 예수께서 자기 몸과 피를 떡과 잔으로 주신다(마 26:26-28). 그는 잔치를 여시며 자기 생명으로 그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는 물을 약속하고(요 4:13-14), 목마른 이는 누구든 자기에게 와서 마시라고 외치신다(요 7:37-39). 요한은 이를 성령으로 설명한다. 이사야 44:3에서 물과 영이 병행하고 55:1에서 물로 오라고 부르는 약속이 그분께 연결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교회는 ‘아멘’으로 응답한다(고후 1:20). 55:3의 ‘확실한’과 ‘아멘’은 믿을 만함을 뜻하는 같은 어근에 속한다.
55:11의 말은 먼저 용서와 귀환의 약속이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예수께서 보내신 아버지의 일을 이루셨으며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고 증언한다(1:14; 4:34; 17:4; 19:30). 보내심을 받아 뜻을 이루는 말씀의 그림에서 그 사역을 읽게 된다. 바울은 이사야 49:8의 은혜의 때를 인용하여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선포하며(고후 6:2),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한다(5:20). 가까이 계실 때 하나님을 찾으라는 부르심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열린다.
귀환한 백성은 여전히 이방 왕의 종이었고(느 9:36-37) 다윗 왕조의 왕좌도 회복되지 않았다. 열방과 피조물이 기뻐하는 약속은 예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기 시작하여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요한계시록 21:6과 22:16-17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신 예수와 성령과 신부의 값없는 생명수 초청을 나란히 둔다. 다시 저주가 없을 새 예루살렘(22:3)은 가시덤불을 내던 땅의 저주(창 3:18)가 걷히는 완성이다. 이사야의 가시나무 대신 자라는 나무들,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은 그 새 창조의 소망으로 이어진다.
현대적 적용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자격을 예배와 헌금과 봉사로 살 수 없다. 목마르고 돈 없는 사람에게 먼저 열린 초청이기 때문이다. 섬김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응답이다. 재산과 지위, 봉사 이력을 하나님 백성으로 들어오는 값처럼 요구하는 태도는 그 초청을 거스른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은 ‘영혼’에 갇힌 내면의 만족이 아니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백성의 회복이므로, 실제로 굶주리는 이웃의 생명도 신앙의 관심에 속한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사람은 악한 행실과 그것을 낳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거짓과 부당한 이익을 붙든 채 초청만 즐길 수는 없다. 삭개오가 속여 빼앗은 것을 갚겠다고 한 회개(눅 19:8)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바로잡는 행동이 뒤따른다. 회개를 촉구하는 사람도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한 예언자처럼 그 부르심 안에 선다. 너그러운 용서의 약속은 죄가 크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미루는 사람을 지금 부른다.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라는 말씀은 이 문맥에서 죄인을 용서하고 회복하실 하나님의 뜻을 보증한다.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긴 채 성공을 보장받으려는 데 이 말을 사용할 수 없다.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 말씀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용서와 언약 백성의 회복을 이룬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해진 이 약속을 믿고 증언한다. 알지 못하던 나라들이 달려오는 것은 교회의 업적을 자랑할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결과다. 회복의 기쁨과 찬송은 그분의 이름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