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이사야 61장은 여호와의 영을 받아 보냄받은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밝히며 시작한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는 문자적으로 영이 “내 위에” 있다는 명사 문장이다. UBS는 이를 여호와의 능력과 함께하시는 임재가 화자에게 주어졌다는 뜻으로 읽으며, 화자를 소명을 받은 예언자이자 해방의 소식을 알리는 전령으로 본다.2 NET는 앞선 42, 49, 50장의 특별한 종과 연결한다.1 이름은 나오지 않으나 화자는 여호와나 슬퍼하는 시온과 구별되는 보냄받은 사람이다.

여호와는 맡기신 일을 수행하도록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왕과 제사장을 세우던 기름부음이 여기서는 부르심의 비유로 쓰인다.21 그는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알리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친다. “가난한 자”(עֲנָוִים, 아나빔)는 힘센 자에게 억눌린 실제 사람들을 가리킨다. “고치며”(לַחֲבֹשׁ, 라하보쉬)는 상처를 싸맨다는 뜻으로, 큰 고통과 절망에 부서진 마음을 돌보는 사명이다.2 40:9에서 시온에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던 동사가 이제 그가 받은 사명을 나타낸다.

그는 포로에게 자유(דְּרוֹר, 데로르)를 선포한다. UBS는 안식년에 종을 풀고 빚을 면제하는 규정을 배경으로 들며, 귀환 뒤에도 약속의 회복을 기다려 자신들을 포로처럼 여기는 백성에게 주어진 소식으로 읽는다. “갇힌 자”는 묶인 자를 뜻하며 원문에 감옥이라는 말은 없다. “놓임”(פְּקַח־קוֹחַ, 페카흐-코아흐)은 여기서만 나오는 표현으로 눈을 뜨는 일에 쓰이는 어근과 관련된다. UBS는 종살이에 묶인 이가 풀려나는 뜻으로 옮기도록 권한다.2 칠십인역과 누가복음 4:18은 눈먼 자가 다시 보는 일로 옮긴다. 이 번역 차이에는 열림이라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다.

2절의 선포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짝짓는다. “은혜”(רָצוֹן, 라촌)는 기꺼이 받아 주시는 호의로, 58:5의 “열납될 날”, 49:8의 “은혜의 때”에도 쓰인다. 58장은 백성의 금식이 열납될 수 있는지 물었으나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친히 은혜의 해를 선언하게 하신다. 보복은 억누르던 원수를 향한 판결이며, NET는 3절의 의를 그 판결로 백성이 신원받는 일과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1 이 선포는 애곡하는 모든 이를 위로한다. 40:1의 “위로하라”가 보냄받은 이의 사명이 된다.

3절은 특히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재 대신 화관,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주겠다고 한다. “대신”이 세 번 반복되고 각 행은 새로 받을 것을 먼저 말한다. “화관”(פְּאֵר, 페에르)과 “재”(אֵפֶר, 에페르)는 자음 순서를 바꾼 말로, 머리에 얹은 애도의 재가 잔치의 장식으로 바뀜을 소리로도 그린다. 기름은 잔치와 환대의 기쁨을 나타낸다. “근심”은 문자적으로 “희미한 영”(רוּחַ כֵּהָה, 루아흐 케하)이다.1 1절에서 여호와의 영을 받은 화자가 여기서는 꺼져 가던 백성의 영을 찬송으로 바꾸는 소식을 알린다.

위로받은 이들은 “의의 나무”, “여호와께서 심으신” 것으로 불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3절). “영광을 나타낼”(לְהִתְפָּאֵר, 레히트파에르)은 앞의 화관과 같은 어근이다. 여호와가 주신 아름다움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낸다.1 60:21의 심은 가지, 49:3의 영광을 나타낼 종과도 이어진다. 4절에서 바로 이 백성이 오래 황폐하고 대대로 무너진 성읍을 다시 세운다. 58:12와 낱말까지 겹치는 약속이다. 여러 세대의 폐허를 회복하는 일을 위로받은 백성이 맡는다.

5-6절에서 외인은 양 떼와 밭과 포도원을 맡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제사장,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로 불린다. 열방 아래 수치당하던 백성이 출애굽기 19:6의 제사장 나라라는 소명을 회복한다. 열방의 재물을 먹고 그 영광을 누린다는 말은 제사장이 봉헌물로 살아가듯 열방의 풍부함을 누리는 그림이다. 60:5, 11의 “이방 나라들의 재물”과 같은 표현이다.1 NET는 7-8절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되 화자의 말이 어디서 바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설명한다.1

7절은 수치 대신 갑절의 몫과 영원한 기쁨을 약속한다. 3절에서 슬픔의 표지가 바뀌었다면 여기서는 능욕과 상실이 바뀐다. 40:2의 갑절의 벌과 61:7의 갑절의 보상은 히브리어 낱말은 다르지만 회복의 대조를 이룬다. 같은 백성을 “너희”와 “그들”로 번갈아 가리키는 인칭 변화도 원문에 있다. 4절의 “오래”, 7절의 “영원한”, 8절의 “영원한”은 같은 말이어서 오래된 폐허를 영원한 기쁨과 언약으로 바꾸는 약속을 잇는다.

8절에서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의 강탈”(גָזֵל בְּעוֹלָה, 가젤 베올라)을 미워하신다고 밝히신다. BHS의 모음대로 읽으면 뒤의 말은 “번제에서”라는 뜻이지만, 개역개정은 다른 모음으로 읽어 “불의”로 옮긴다. UBS도 이방이 유다에게 행한 강탈이라는 문맥에서 후자를 선호한다.4 여호와는 신실하게 백성의 보상을 갚고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다. 보상이라는 명사는 49:4의 종의 보응과 62:11의 여호와 앞에 있는 보응에도 쓰인다. 55:3의 영원한 언약이 다시 약속된다. 그 자손은 열방에 알려져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으로 인정받는다(9절).

10절의 일인칭 화자는 크게 기뻐한다. NET는 시온이나 민족이 의인화되어 응답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1 같은 동사를 겹친 “크게 기뻐하며”가 그 기쁨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구원의 옷과 신원을 뜻하는 공의의 겉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1 신랑의 “사모”는 3절의 화관과 같은 낱말이다. “쓰며”(יְכַהֵן, 예카헨)는 문자적으로 제사장처럼 행한다는 뜻으로 6절의 제사장 소명을 되새긴다.1 시온은 신랑과 신부처럼 단장하며, 62:5에서는 하나님이 신랑처럼 시온을 기뻐하신다.

11절은 땅과 동산에서 싹이 돋듯 주 여호와가 모든 나라 앞에 공의와 찬송을 솟아나게 하실 것을 약속한다. 싹을 내고 움돋고 솟아나게 한다는 세 표현은 같은 어근이다. 3절에서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가 된 백성은 이제 그분이 일으키시는 회복을 열방 앞에 드러낸다. 공의는 여기서도 구원과 회복을 강조하며, 찬송의 옷을 입은 백성의 찬송이 모든 나라 앞에 나타난다.1 한 사람에게 주어진 영과 사명이 백성의 회복과 열방 앞의 찬송으로 이어진다.

성경신학적 통찰

레위기 25:8-17의 희년에는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자유를 선포하고 각 사람이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간다. 토지의 값도 다음 희년까지 거둘 소출에 따라 매기며 형제를 속이지 말라고 명한다. 가난으로 팔린 사람도 가족에게 돌아온다(25:39-41). 이사야 61장의 자유와 은혜의 해는 이 해방법의 언어로 포로 이후의 백성에게 말한다. UBS는 안식년의 종 해방과 채무 면제를, NET의 누가복음 주석은 희년을 배경으로 든다.23 이사야는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의 언어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해방을 선포한다.

출애굽기 19:4-6에서 애굽을 나온 백성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는다. 이사야 61:6, 8과 62:12에서는 그 소명과 언약이 회복된다. 56:6-7은 여호와와 연합한 이방인의 예배를 받으실 것을 약속하고, 66:20-21은 열방에서 모여드는 장면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신다고 한다. “그 가운데”가 귀환하는 이스라엘인지 열방까지 포함하는지는 해석이 갈린다. 61:5-6의 외인과 제사장 구별은 열방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 흐름과 연결된다.

40:1, 9에서 명하신 위로와 아름다운 소식이 61:1-2에서는 한 사람의 사명이 된다. 49:6-13의 종은 야곱을 일으키고 이방의 빛이 되며, 은혜의 때에 갇힌 이를 불러내고 고난받는 백성을 위로한다. 52:7-10은 구속의 소식을 듣는 폐허에게 노래하라 명한다. 61장에서는 그 폐허가 다시 세워지고 시온이 신부처럼 단장한다. 종의 사명과 시온의 회복이 이어진다.

53장의 종은 질고와 슬픔을 지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그 고난으로 평화와 나음을 얻게 한다. 54:17은 복수인 “여호와의 종들”이 누릴 기업과 하나님께 받은 공의를 말한다. 61장도 한 사람의 선포를 받은 백성이 의의 나무와 제사장으로 서는 모습을 그린다. 61장의 화자가 53장의 종과 동일한지는 직접 밝혀지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사명이 많은 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58:6-12은 압제의 결박을 풀고 주린 자와 집 없는 자를 돌보라고 요구하며 오래 황폐한 곳의 재건을 약속한다. 61장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통해 해방을 선포하고 같은 낱말로 재건을 약속한다. 백성이 정의를 행하라는 요구와 하나님이 주시는 해방이 이어진다. 누가복음 4:18이 61장 인용에 58:6의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를 넣는 것도 두 장을 연결한다.3

60-62장은 시온의 빛과 기쁨을 노래한다. 60:17의 귀한 것으로 대신함과 20절의 슬픔의 끝은 61:3의 교환과 위로를 준비한다. 62:3에서는 시온 자체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관이 되고 5절에서는 그분이 신랑처럼 기뻐하신다. 백성에게 주신 아름다움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온의 모습이 된다.

61:2의 보복의 날과 은혜의 해는 63:4의 원수 갚는 날과 구속할 해에 이어진다. 억압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판결이 억눌린 백성에게 구속이 된다. 63:1-6에서 홀로 일하시는 여호와가 그 심판의 주체이다. 백성은 그분께 신원받는다.

창세기 12:1-3의 아브라함의 복은 모든 족속을 향한다. 이사야 61:9에서 열방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을 알아보고, 11절에서는 모든 나라가 공의와 찬송을 본다. 60:3에서 시온의 빛으로 나아오는 열방처럼 이 회복은 민족들 앞에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낸다.

기독론적 해석

이사야 61장은 귀환 뒤에도 폐허와 수치 속에서 회복을 기다리던 시온에게 주어졌다.2 58-59장은 백성의 불의와 중재자의 부재를 드러내고 여호와가 자기 팔로 구원하신다고 선언한다(59:16). 영과 말씀의 언약(59:21), 시온의 영광(60장) 뒤에 영을 받은 화자가 등장한다. 신약은 그 사명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밝힌다.

누가복음 4:16-21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오신 예수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하신다. NET는 기름부음이 예수의 세례 때 성령이 임하신 일(3:21-22)을 돌아보게 한다고 설명한다.3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그분 안에서 성취된다.

누가복음 4:18-19는 이사야 61:1-2 앞부분에 58:6의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넣는다. NET는 이스라엘이 하지 못한 해방을 예수가 직접 이루시는 뜻으로 본다.3 “자유”(ἄφεσιν, 아페신)와 “자유롭게”(ἀφέσει, 아페세이)는 같은 명사이며 24:47에서는 죄 사함을 가리킨다. 예수의 해방은 몸과 삶의 속박에서 죄의 속박까지 이른다. 누가복음 18:35-43의 맹인은 눈을 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른다.

NET는 누가복음의 가난한 자를 실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들로 풀이하며 1:52와 6:20을 함께 든다. 세상이 낮추던 이들을 예수는 돌아보신다. 개역개정 누가복음 4:18에는 이사야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가 없다. NET는 중요한 여러 사본에 이 구가 없고 후대 필사자가 이사야에 맞추어 덧붙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3

예수는 은혜의 해에서 낭독을 멈추고 이사야의 보복의 날을 읽지 않으신다. NET는 그 은혜의 해를 희년의 구원 비유로 읽는다.3 이는 나사렛에서 선포된 은혜의 “오늘”을 강조한다. 신약은 마지막 판결도 말한다. 요한계시록 21:4, 27의 새 예루살렘에는 애통과 속됨이 없으며, 고린도후서 6:2는 지금을 은혜와 구원의 때로 선포한다. 백성은 은혜의 초청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린다.

고향 사람들은 요셉의 아들이 어떻게 이 약속을 말하느냐고 반문한다. NET는 “은혜의”(δεκτόν, 데크톤)와 선지자가 “환영을 받는”(δεκτός, 데크토스)의 낱말 놀이를 지적한다. 받으실 만한 해를 선포한 예수는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3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에게 임한 은혜를 듣고 청중은 분노하여 예수를 내쫓는다. 자기 집단을 넘어가는 은혜를 거부한 것이다. 4:43에서 예수는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받았다고 밝히신다.

누가복음 7:18-23에서 예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요한에게 맹인이 보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들리는 사역을 알리라고 하신다. 사도행전 10:38도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 받은 예수가 눌린 이들을 고치셨다고 증언한다. 부활하신 예수는 자신의 고난과 부활, 모든 족속을 향한 회개와 죄 사함을 밝히신다(눅 24:46-47). 이사야 53장의 종처럼 그분이 슬픔과 죄를 담당하시어 자유를 주신다.

갈라디아서 3:27은 성도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한다. 이사야 61:10의 구원의 옷처럼 그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다. 누가복음 5:34-35에서 예수는 자신을 신랑으로 밝히며 잔치의 기쁨을 알리신다. 베드로전서 2:9의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는 출애굽기 19:6과 이사야 61:6의 소명을 잇는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도 제사장 백성에 참여하며 이는 이사야 56:6-7의 이방인 환대와 이어진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예루살렘은 단장한 신부처럼 내려오고 하나님은 모든 눈물과 애통을 없애신다. 만국은 그 빛으로 다니고 왕들은 영광을 가져온다(21:2-4, 24-26). 이사야 61장의 신부 단장, 위로와 열방의 영광이 이 장면과 이어진다. 예수 안에서 선포된 은혜의 열매는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 온전히 드러난다.

현대적 적용

가난한 자와 포로, 마음이 부서진 자는 실제로 짓눌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임하는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그 고통을 돌아보시고 자유와 회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죄 사함을 주시는 예수는 병든 몸을 고치고 눌린 이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그분의 복음을 듣는 사람은 이웃을 짓누르는 속박과 가난을 외면할 수 없다.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고 강탈을 미워하신다. 레위기 25장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는 명령과 61:8의 정당한 보상은 재산과 거래도 하나님의 뜻 아래 있음을 밝힌다. 해방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익을 위해 이웃의 몫을 빼앗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하나님께 속한 소유는 이웃을 종속시키는 도구가 될 수 없다.

화관과 기쁨의 기름, 찬송의 옷은 하나님이 슬퍼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 약속을 근거로 슬픈 사람에게 당장 기뻐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본문은 그들이 애곡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슬픔을 바꾸시는 분을 가리킨다. 위로받은 백성은 그 은혜로 다시 일어나 무너진 곳을 세운다.

외인과 이스라엘의 역할을 구별한 5-6절은 포로기의 수치가 뒤집히는 회복의 약속이다. 오늘의 민족과 계층 사이에 우열을 정하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도 제사장 백성의 일원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집단의 소유로 여겨 낯선 사람을 배척한다면 나사렛 청중에게 주어진 경고를 들어야 한다.

보복은 강탈당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내리시는 판결이다. 억눌린 사람은 그분께 신원을 구할 수 있다. 이 약속을 개인의 복수나 집단의 증오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 은혜의 해를 여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고 회개와 죄 사함의 초청에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