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디도의 간절함과 자원함 (16-17절)
16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간절함(σπουδὴν, 스푸덴)은 성도들을 돕는 일에 기울이는 열심이며, “같은”과 “디도의 마음에도”는 디도가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고린도 성도들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8:1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나눔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불렀던 바울은 이제 그 일을 도울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한다. 8:6에 따르면 디도는 이미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이다. 바울은 대표단을 소개하면서 먼저 디도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마음을 쓰는 사람임을 밝힌다.
17절은 디도의 간절함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바울의 권함을 받았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고린도로 나아갔다. 바울이 권했는데도 디도가 자원하여 나아갔다는 말은, 디도가 바울이 권하기 전부터 고린도에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1 ‘자원하여’(αὐθαίρετος, 아우타이레토스)는 8:3에서 마게도냐 성도들이 힘에 지나도록 연보에 참여한 모습을 묘사한 말이기도 하다. 자원하여 낸 선물을 자원하여 나선 일꾼이 맡는다. ‘나아갔고’(ἐξῆλθεν, 엑셀텐)는 과거형이지만, 편지를 받아 읽는 고린도 성도들의 시점에서 쓴 서신적 부정과거로 보면 ‘지금 너희에게 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24절의 요청으로 보아 이 편지는 디도와 두 형제와 함께 고린도에 도착했을 것이다.2 그렇다면 16-24절은 고린도 성도들 앞에 와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추천의 글이다.
여러 교회가 칭찬하고 택한 형제 (18-19절)
18절은 디도와 함께 보내는 형제를 소개한다. 그는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다. 원문은 그가 복음과 관련된 어떤 일로 칭찬받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해석자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알려졌다고 본다.3 ‘모든 교회’의 범위도 분명하지 않다. 8:1의 마게도냐 교회들만 가리킨다면 고린도 성도들은 이 형제를 잘 몰랐을 것이고, 고린도 교회까지 포함한다면 그를 알았을 것이다.4 바울은 그의 이름 대신 여러 교회가 알고 인정하는 복음 사역을 신뢰의 근거로 제시한다.
19절은 “이뿐 아니라”로 시작하여 더 공적인 근거를 덧붙인다. 이 형제는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바울 일행과 동행한다. 본문은 어느 교회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택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가 함께하는 길은 이 연보를 전달하는 여정이며, 아마 예루살렘까지 이어질 것이다.5 바울은 이 연보를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이라고 부른다. ‘은혜’(χάριτι, 카리티)는 8:6에서 디도가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성취하게 할 “이 은혜”와 같은 말이며, 여기서는 바울 일행이 맡아 전달하는 구체적인 선물을 가리킨다. 목적구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연보를 맡아 섬기는 일에 걸릴 수도 있고, 교회들이 형제를 택한 일에 걸릴 수도 있다.6 원문에서 이 구는 ‘우리가 맡은’ 바로 뒤에 오므로 앞의 읽기가 자연스럽고, 동행자를 둔 이유는 20절이 따로 밝힌다. 바울은 연보를 맡아 전달하는 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기꺼이 도우려는 자기 일행의 마음(προθυμίαν, 프로튀미안)을 보이려 한다.
주 앞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다루는 연보 (20-21절)
20절은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를 밝힌다. ‘이것을 조심함은’(στελλόμενοι τοῦτο, 스텔로메노이 투토)은 바라지 않는 일을 경계하여 피한다는 뜻이고, 목적은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거액의 연보’(τῇ ἁδρότητι ταύτῃ, 테 하드로테티 타우테)는 문자적으로 ‘이 풍성함’이며, 개역개정은 그것이 가리키는 많은 액수의 연보를 풀어 옮겼다. 19절에서 ‘은혜’라고 부른 선물을 20절은 ‘거액’이라고 부르고, 두 절 모두 그것을 “우리가 맡은” 일로 설명한다. 은혜의 선물은 실제로 큰돈이었고, 그 돈을 맡은 사람은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연보를 자기 이익을 위해 쓴다는 의심, 그리고 남의 돈을 다루면서 부정직하거나 서툴다는 인상을 피하려 했다.7 그래서 그는 교회들이 택한 사람과 함께 연보를 옮겨, 다른 사람들도 자기 일행의 정직함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21절은 바울이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를 밝힌다. ‘조심하려 함이라’로 옮긴 동사(προνοοῦμεν, 프로노우멘)는 미리 생각하여 마음에 둔다는 뜻이며, 20절이 부정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한 내용을 긍정적이고 일반적인 말로 다시 표현한다.8 개역개정은 두 절의 동사를 모두 ‘조심’으로 옮겼지만, 20절은 비방을 피하는 경계를, 21절은 선한 일을 미리 헤아리는 준비를 말한다. 바울 일행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καλὰ, 칼라)을 헤아린다. 이 문장은 칠십인역 잠언 3:4의 “주와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미리 헤아리라”(προνοοῦ καλὰ ἐνώπιον κυρίου καὶ ἀνθρώπων, 프로노우 칼라 에노피온 퀴리우 카이 안트로폰)의 어휘와 생각을 반영한다.9 히브리어 본문을 따른 개역개정 잠언 3:4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약속이므로, 두 본문의 표현이 겹치는 곳은 칠십인역이다.
21절의 ‘주 앞’은 하나님 앞을, ‘사람 앞’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판단 앞을 가리킨다.10 바울은 4:2에서도 속임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자신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21절은 이 태도를 연보를 다루는 일에 적용한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할 뿐 아니라, 사람들도 그 정직을 확인할 수 있게 일을 처리한다. 연보를 낸 교회와 받을 성도들은 맡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며, 사도인 바울도 이 책임에서 빠지지 않는다.
여러 번 확인된 형제 (22절)
22절은 세 번째 사람을 소개한다. 바울은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라고 말한다. ‘확인하였거니와’(ἐδοκιμάσαμεν, 에도키마사멘)는 시험하고 살펴 인정했다는 뜻이다. 첫 형제가 여러 교회의 칭찬과 선택으로 인정받았다면, 이 형제는 바울 일행이 여러 일에서 거듭 지켜본 성실함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지금 고린도 성도들을 크게 믿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바울의 동역자 디도와 교회들의 사자인 형제들 (23절)
23절은 세 사람을 두 무리로 나누어 추천을 정리한다. 개역개정의 “디도로 말하면”과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은 원문의 εἴτε ... εἴτε(에이테 ... 에이테) 구문을 옮긴 말이다. 디도는 바울의 ‘동료’(κοινωνὸς, 코이노노스)이자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동역자’(συνεργός, 쉬네르고스)다. 앞말은 가까이 함께하는 동반자를, 뒷말은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디도는 고린도 성도들을 돕는 바울의 동역자로 소개된다.11 두 형제는 ‘여러 교회의 사자들’(ἀπόστολοι ἐκκλησιῶν, 아포스톨로이 에클레시온)이다. 여기서 ἀπόστολοι는 열두 사도를 가리키지 않고 교회들이 보낸 사람들을 뜻한다.12 디도는 바울과의 관계로, 두 형제는 그들을 보낸 교회들로 신뢰의 근거를 얻는다.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불린 두 형제 (23절)
바울은 두 형제를 ‘그리스도의 영광’(δόξα Χριστοῦ, 독사 크리스투)이라고도 부른다. 원문에서 이 말은 두 번째 εἴτε 절 안에서 “우리 형제들”, “여러 교회의 사자들”에 이어 같은 사람들을 설명한다. 이 칭호가 디도까지 포함한 세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13 그러나 23절은 εἴτε로 디도와 형제들을 나누고, 디도에 관한 절은 ‘동역자’에서 끝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광’은 두 형제에게 붙은 칭호다.
사람을 누군가의 ‘영광’이라고 부르는 말은 그 사람이 그분을 존귀하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러 번역이 이 구를 ‘그리스도께 영예가 되는 사람들’,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옮긴다.14 이 칭호를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읽는 해석도 있다.15 그러나 16-23절에서 복음으로 칭찬받는 사람은 18절의 첫 형제이고, 22절의 형제는 여러 일에서 거듭 확인된 간절함으로 추천받는다. 두 형제 모두에게 붙은 이 칭호는 18절의 복음 사역, 19절의 교회들의 선택, 22절의 확인된 성실함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19절에서 연보를 섬기는 목적이 주의 영광이었다면, 23절은 그 일을 맡은 사람들 자신을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는 요청 (24절)
24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여 앞의 추천을 근거로 고린도 교회에 응답을 요청한다. 원문에는 정동사가 없고 분사 ἐνδεικνύμενοι(엔데이크뉘메노이)가 문장의 중심 동작을 나타낸다. 이 문장은 앞의 추천에서 결론을 끌어내며 고린도 성도들에게 직접 말하므로, 이 분사는 요청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개역개정의 명령형 “보이라”는 이 요청을 적절하게 옮긴다. 보여야 할 것은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다. 원문은 사랑의 대상을 밝히지 않아, 디도와 두 형제를 향한 사랑일 수도 있고 바울을 향한 사랑일 수도 있다.16 그 증거를 받을 사람이 대표단(εἰς αὐτοὺς, 에이스 아우투스)이므로,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은 대표단을 맞이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바울의 자랑도 이 일에 걸려 있다. 9:2-3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의 준비를 자랑했고, 그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형제들을 보낸다고 말한다. “여러 교회 앞에서”는 대표단을 보낸 교회들, 또는 더 넓은 교회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17 고린도 교회가 대표단을 어떻게 맞이하고 연보를 어떻게 준비하는지가 그 교회들에게 알려진다.
성경신학적 통찰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헤아림
16-2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인 선물을 맡아,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신뢰받을 수 있게 다룬다. 21절에서 바울은 인용 표시 없이 칠십인역 잠언 3:4의 “주와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미리 헤아리라”는 표현을 자기 문장에 담아 이 원칙을 말한다. 잠언 3:3-4는 인자와 진리를 마음판에 새기라고 권한 뒤,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받을 평가를 말한다. 잠언에서 하나님 앞의 신실함이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삶으로 이어지듯,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정직을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공동체가 인정한 사람과 확인할 수 있는 전달
이 원칙은 고린도 교회가 이 연보에 관해 처음 지침을 받을 때부터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6:1-4에서 바울은 매주 첫날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 자신이 갈 때 연보를 거두지 않게 하라고 말한다. 또 고린도 교회가 인정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주어 선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고, 자신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한다. 바울은 처음부터 연보를 혼자 맡지 않고 교회가 인정한 사람들이 선물을 옮기게 했다. 18-23절에서 여러 교회가 택한 형제가 바울 일행과 동행하는 것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에스라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갈 은과 금과 기물을 달아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들과 기물이 여호와께 거룩하다고 말하며, 예루살렘에서 다시 달아 넘길 때까지 지키라고 한다(에스라 8:24-29). 일행은 길에서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을 도와 대적에게서 건지셨다고 고백하고(에스라 8:31), 도착한 뒤에는 모든 것을 세고 달아 그 무게를 기록한다(에스라 8:33-34). 에스라 일행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길을 떠났고, 도착해서는 사람들 앞에서 예물의 무게를 확인했다. 에스라의 예물은 성전을 위한 것이고 바울의 연보는 가난한 성도를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속한 선물을 맡은 사람은 그것을 자기 소유와 구별하고 목적지에 실제로 이르렀음을 다른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두 본문은 이어진다.
사도행전 6:1-6은 나눔을 맡을 사람을 세우는 방식에서 주제적 유사성을 보여 준다.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빠진다는 불평이 일어나자, 사도들은 공동체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게 하여 이 일을 맡긴다. 공동체가 아는 평판과 공동체의 선택은 18-19절에서 첫 형제를 추천하는 근거와 닮았다. 나눔을 맡을 사람을 신중하게 세우는 일은 나눔을 받는 약한 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정직한 전달로 이루어지는 교회들의 교제
신뢰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연보의 목적에 있다. 로마서 15:25-27에서 바울은 이 연보를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설명하고, 이방인 신자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받았으므로 육적인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15:31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자신의 섬김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여기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연보는 이방인 교회들과 예루살렘 성도들 사이의 교제였고, 이 교제는 선물이 정직하게 전달되고 기꺼이 받아들여질 때 이루어진다.
기독론적 해석
그리스도의 은혜와 주의 영광을 위한 섬김
대표단의 섬김은 8:9에서 바울이 밝힌 그리스도의 은혜에 뿌리를 둔다. 바울은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나눔을 권했다. 그 은혜에 응답하여 모은 선물은 디도와 두 형제의 손을 거쳐 필요한 성도들에게 이른다. 맡은 사람이 그 선물을 다른 목적에 쓰면 선물을 낸 사랑도, 도움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필요도 손상된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응답하는 나눔은 그 선물을 정직하게 옮기는 일꾼들의 수고를 거쳐 완성된다.
19절에서 바울은 연보를 맡아 섬기는 목적을 주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9:12-13은 이 영광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 준다. 연보는 성도들의 부족을 채우고, 받는 이들은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여 후하게 나눈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감사는 선물이 맡긴 목적대로 도착할 때 일어난다. 대표단이 연보를 정직하게 맡아 전달하는 일은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불리는 일꾼
23절에서 바울은 교회들이 보낸 두 형제를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부른다. 이 칭호는 두 형제가 자기 노력이나 자기 칭찬으로 얻은 명예가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능력으로 세우신 사람들이다.18 영광은 그리스도께 속하고, 두 형제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바울은 먼저 16절에서 디도의 간절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19절에서 섬김의 목적을 주의 영광으로 밝힌 뒤, 24절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이라고 요청한다. 일꾼을 존중하는 일은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심을 인정하는 일이다.
빌립보서 2:25-30의 에바브로디도는 교회가 보낸 일꾼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보여 준다. 바울은 그를 빌립보 교회의 사자이자 자신의 쓸 것을 돕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렀고,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그를 주 안에서 기쁨으로 영접하고 이런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권한다. 교회가 보낸 사람이 물질을 전달하는 일을 맡았어도 그 수고는 그리스도의 일에 속한다. 24절에서 바울이 대표단에게 사랑을 보이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들이 그리스도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종의 정직
고린도후서 4:5에서 바울은 자신을 전파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자신들이 성도들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고 말한다. 23절에서 디도를 ‘너희를 위한 동역자’로 소개하는 말도 이 관계를 따른다.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사람은 성도들을 위해 일하며, 공동체가 맡긴 돈을 다룰 때에도 성도들이 뜻한 섬김이 이루어지도록 책임을 진다. 그 돈은 맡은 사람의 영향력이나 기호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확인하는 일은 이 종의 자리에 어울린다.
맡은 선물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 동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나온다. 고린도후서 5:14-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맡은 선물을 자기 몫으로 돌리지 않는다. 20-21절에서 바울이 비방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을 헤아리는 모습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의 태도와 맞는다.
현대적 적용
알린 목적대로 헌금을 다룰 책임
바울은 연보를 ‘은혜’라고 부르면서도 그것을 맡아 옮길 사람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다른 교회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금을 모으는 오늘의 교회도 선한 목적을 알릴 때 그 목적을 실제로 지킬 책임을 진다. 모인 헌금은 맡은 사람이 처음 알린 목적과 다르게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공동체가 확인하는 재정 책임
바울이 대표단을 추천한 근거는 구체적이다. 첫 형제는 복음 사역으로 여러 교회에서 칭찬받고 교회들의 선택을 받았으며, 둘째 형제는 여러 일에서 여러 번 성실함이 확인되었다. 오늘 교회가 재정을 맡길 사람을 세울 때도 공동체가 아는 행적과 확인된 성실함을 묻는다. 신뢰할 만한 사람을 세우는 일은 그 선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바울은 디도를 신뢰하면서도 여러 교회가 택한 형제를 동행하게 했고, 21절에서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을 헤아린다고 말했다. 선물을 낸 공동체는 그 선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정당한 관심을 가진다. 그러므로 교회는 재정에 관한 질문을 곧바로 믿음이나 충성의 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 질문하는 사람은 선물을 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묻고, 맡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신뢰받는다는 이유로 설명을 생략하지 않고 선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공동체가 알 수 있게 한다. 이 정직함은 교회 밖에서 공동의 돈이나 후원금을 맡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요구된다.
강요 없는 사랑의 증거와 일꾼에 대한 존중
24절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교회 앞에서 사랑의 증거를 보이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8:12-14에서 바울은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신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고린도 성도들은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른 교회들 앞에서 보이라는 이 요청을 근거로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를 내게 하면, 바울이 앞에서 밝힌 원칙과 어긋난다. 사랑의 증거는 각자의 형편 안에서 기꺼이 준비한 선물과 대표단을 맞이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바울은 교회들이 보낸 형제들을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부르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대표단 모두에게 사랑을 보이라고 권한다. 오늘의 공동체도 헌금을 맡아 처리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그리스도의 일로 알아보고 존중한다. 맡은 사람은 그 존중에 정직함으로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