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시편 24편은 온 땅의 주인을 찬양하고(1-2절), 그분 앞에 설 예배자의 삶을 물은 뒤(3-6절), 문들을 향해 영광의 왕을 맞으라고 외친다(7-10절). 표제 “다윗의 시”(לְדָוִד מִזְמוֹר, 레다비드 미즈모르)는 이 시를 다윗과 연결한다. BHS는 표제를 1절 안에, 개역개정은 번호 없이 본문 앞에 두며, 본문 1-10절의 절 번호는 같다. 3절에서 누가 하나님 앞에 오르고 설 수 있는지 묻던 질문은 8절과 10절에서 들어오시는 왕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는 1절의 선언은 히브리어에서 소유자인 여호와를 맨 앞에 놓아 강조한다. 땅과 그 안에 충만한 것, 세계와 거기 사는 자들을 짝지어 사물과 생명 모두가 그분께 속한다고 노래한다. Robert G. Bratcher와 William D. Reyburn의 UBS 해설도 이 병행을 사람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소유 선언으로 읽는다.1 2절은 그 이유를 밝힌다. 여호와께서 바다와 강 위에 땅을 세우고 굳게 하셨기 때문이다. UBS는 이 표현을 땅 아래에 거대한 물이 있다고 생각한 고대의 세계상과 연결한다.1 사람이 발 딛는 땅은 창조주께 의존하며, 성소에서 맞을 왕은 그 땅과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다.

3절은 온 세계에서 여호와의 산과 거룩한 곳으로 시선을 좁힌다. 산에 오르고 성소에 선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물 수 있는지 묻는다. UBS는 시온 성전 입구에서 순례자들이 입장 조건을 묻고 제사장이 대답했을 것으로 설명한다.2 이 문답에서 예배자는 성소에 도착하기까지 살아온 삶을 질문받는다.

4절의 대답인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는 행동과 그 행동을 움직이는 동기를 가리킨다. UBS도 손과 마음을 외적인 행동과 내적인 동기로 풀이한다.3 의식적으로 손을 씻는 예배자라도 이웃을 속이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좋은 의도를 내세워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진실한 행실과 마음이 요구된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는 자신을 헛된 것에 맡기거나 그쪽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UBS는 허탄한 것이 우상을 가리킬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 거짓을 사랑하거나 악한 일에 생각을 두는 것으로 읽는 해석도 소개한다.3 뒤의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은 속일 목적으로 하는 약속과 증언을 금한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이웃 앞에서 하는 말의 진실함으로 드러난다.

4절의 “뜻을”에는 본문 전승의 차이가 있다. BHS 웹 본문은 “나의 영혼”(נַפְשִׁי, 나프쉬)으로 읽지만, UBS에 따르면 많은 히브리어 사본과 고대 역본은 “그의 영혼”으로 읽는다. UBS는 “나의 영혼”을 여호와의 이름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여 출애굽기 20:7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 목적에 사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해석도 소개한다.3 개역개정의 “뜻을”에는 이 소유 표현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영혼”으로 읽으면 예배자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묻고,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풀이하면 그 이름의 남용을 금한다. 두 해석 모두 뒤의 거짓 맹세 금지와 연결된다.

5절에서 예배자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받는다. “받고”(יִשָּׂא, 잇사)는 4절에서 영혼을 헛된 것에 “들다”라는 뜻으로 쓰인 동사와 같은 어근이다. 헛된 것을 향해 자신을 들지 않은 사람이 이제 하나님께 복을 받아 지닌다. 의도 복과 짝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나타난다. 예배자의 진실한 삶은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

6절은 이들을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라 부른다. “족속”(דּוֹר, 도르)은 여기서 같은 성품을 지닌 무리를 가리킨다. “주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מְבַקְשֵׁי פָנֶיךָ, 메바크셰 파네카)에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하던 시가 그분께 직접 말을 건넨다. 이어 마소라 본문에는 “야곱”(יַעֲקֹב, 야아코브) 한 단어가 있어 하나님을 찾는 무리를 야곱이라 부르는 것으로 읽힌다. UBS에 따르면 히브리어 사본 둘과 시리아어역에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있고, 칠십인역도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로 읽는다. 개역개정의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은 이 전승들에 가깝다.4 끝의 “셀라”(סֶלָה, 셀라)는 뜻이 분명하지 않은 예전 용어로, 10절 끝에도 나와 두 단락을 마무리한다.

7절은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שְׂאוּ שְׁעָרִים רָאשֵׁיכֶם, 세우 셰아림 라셰켐)라고 외친다. 4절의 영혼, 5절의 복에 이어 이제 문의 머리가 “들다”라는 동사의 대상이 된다. 문의 머리는 상인방이나 아치로 이해되기도 하며, UBS는 머리를 드는 것이 기쁨을 나타낼 가능성도 소개한다. 또 이 장면을 레위인들이 언약궤를 메고 들어오는 행렬과 연결한다.5 시 자체에는 언약궤나 특정 행렬이 언급되지 않는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וְהִנָּשְׂאוּ פִּתְחֵי עוֹלָם, 베힌나세우 피트헤 올람)에서 “영원한”은 오래됨과 영속함을 모두 나타낼 수 있다. UBS는 이미 오래된 예루살렘의 문으로 보는 해석과, 땅의 문을 하늘 거처의 문과 연결하는 해석을 소개한다.5 문이 높아져야 하는 목적은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게 하는 데 있다. 9절은 같은 외침을 되풀이하면서 7절의 수동 명령 “들려라”를 능동 명령 “들라”(וּשְׂאוּ, 우세우)로 바꾼다. 개역개정은 둘 다 “들릴지어다”로 옮긴다. 문들을 사람처럼 부르는 외침은 들어오시는 왕의 위엄을 높인다.

8절의 영광의 왕은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גִּבּוֹר מִלְחָמָה, 깁보르 밀하마) 여호와이시다. “능한”은 용사를 가리키는 말로, 왕을 백성을 구원하고 대적을 이기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출애굽기 15:3도 바다에서 구원하신 여호와를 용사로 찬양한다. 10절의 질문은 대명사를 더하여 왕의 신원을 거듭 묻고, 마지막 대답은 “만군의 여호와”(יְהוָה צְבָאוֹת, 전통적으로 아도나이 체바오트로 읽음)라는 이름을 밝힌다. 군대를 거느리시는 그분이 곧 영광의 왕이시다. 온 땅의 주인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들어오시며, 백성은 정결과 진실함으로 그분을 맞는다.

성경신학적 통찰

창세기 1:1-10에서 하나님은 물을 나누고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여 생명이 살 터전을 마련하신다. 시편 24:2도 사람이 발 딛는 땅을 하나님의 창조에 의존하는 것으로 노래한다. 출애굽기 19:3-6에서는 온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과,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시는 말씀이 이어진다. 시편에서도 온 땅의 주권을 고백한 뒤 그분의 산에 오를 백성의 삶을 묻는다. 구출과 언약의 은혜를 받은 백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출애굽기 15:1-3은 바다에서 구원하신 여호와를 용사로 찬양하고, 13-18절은 그분이 구속받은 백성을 거룩한 처소와 기업의 산으로 인도하며 영원히 다스리신다고 노래한다. 시편 24편의 거룩한 산과 전쟁에 능하신 왕도 이 구원의 언어와 이어진다. 백성이 성소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0:7의 이름 남용 금지와 16절의 거짓 증언 금지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이웃 앞에서 하는 말을 연결한다. 시편 24:4의 “나의 영혼”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풀이하면 20:7과 더 직접 연결되며, “그의 영혼”으로 읽어도 신뢰와 맹세의 진실함을 묻는다. 시편 15편 역시 성산에 살 사람을 물으며 비방과 이웃을 해치는 행위, 부당한 돈거래를 금하고 손해가 나더라도 맹세를 지키라고 한다. 예배자가 손과 마음으로 행한 일에는 이웃을 대하는 책임이 포함된다.

시편 51:6-12에서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씻음과 정한 마음을 구한다. 시편 24편이 정결한 손과 마음을 요구한다면, 51편은 죄인이 그 정결을 하나님께 받아야 함을 밝힌다. 이사야 6:1-7에서도 온 땅에 충만한 왕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을 고백하고, 제단의 숯불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다.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받는다는 시편 24:5의 고백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드러내고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신다.

사무엘상 4:3-11에서 이스라엘은 언약궤가 자신들을 구원하리라 기대했지만 전투에 패하고 궤도 빼앗긴다. 21-22절은 이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사건이라 부른다. 사무엘하 6:1-15에서는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다윗이 웃사의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며, 뒤에 오벧에돔의 집에 내린 복을 듣고 기쁨으로 궤를 맞는다. 하나님의 임재는 백성에게 복과 기쁨을 주며 그분의 거룩함에 대한 경외를 요구한다.

UBS는 시편 24:7-10의 문답을 언약궤 행렬과 연결하며 사무엘하 6:2와 사무엘상 4:21을 참조한다.5 궤와 결부된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 떠나거나 돌아오는 영광의 주제가 이 설명을 뒷받침한다. 특정한 행렬의 날짜나 사건은 시에 제시되지 않는다. 시편의 왕은 온 땅과 예배자의 행실을 다스리는 주님이시다. 사람은 승리를 확보하려고 그분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모스 5:21-24에서 하나님은 절기와 제사와 노래를 거절하고 공의와 정의를 요구하신다. 시편 24편의 깨끗한 손과 마음, 진실한 맹세도 예배와 이웃을 대하는 삶을 분리할 수 없게 한다. 온 땅의 주인을 찬양하면서 그분이 지으신 사람을 해치는 불의를 계속할 수 없다.

기독론적 해석

시편 24편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 그분을 왕으로 맞는 노래이다. 구약의 백성은 그 정결의 요구 앞에서 거듭 실패했고, 죄를 고백하며 새 마음을 구했다. 신약은 예수께서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서시고 자기 백성을 그분께 나아가게 하신다고 증언한다.

요한복음 1:1-5는 만물이 말씀을 통해 지어졌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온 땅이 여호와께 속한다는 시편의 고백은 그리스도를 통한 창조와 연결된다. 고린도전서 10:25-29에서 바울은 시편 24:1을 직접 인용하여 시장의 음식을 양심 문제로 캐묻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양식이 주께 속하므로 감사히 받되, 같은 식탁에 앉은 이웃의 양심과 유익을 존중해야 한다.

마태복음 5:1-12에서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시편에서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듯, 예수의 약속도 정결과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연결한다. 가난한 심령과 애통함, 자비와 의에 대한 갈망을 말하는 산상수훈의 복은 자기 의를 자랑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7:23-28의 예수께서는 거룩하고 악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으신 대제사장으로, 자기 죄를 위한 제사 없이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 항상 살아서 간구하시는 그분은 자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 히브리서 9:23-28에서는 하늘 자체에 들어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단번의 희생으로 죄를 제거하신다. 하나님 앞에 누가 설 수 있는지를 묻는 성도는 이 정결한 대제사장과 그분의 희생을 의지한다.

히브리서 10:19-25는 예수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권한다. 마음과 양심의 정결, 몸의 씻음을 말한 뒤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권면이 따른다. 그리스도께 받은 정결은 진실한 행실로 이어진다. 히브리서 2:14-18의 대제사장은 혈과 육을 지니고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기에 시험받는 사람들을 도우신다. 연약함과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도 그분께 나아가 도움을 구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6-9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영광의 주”라 부른다. 빌립보서 2:5-11에서는 십자가의 죽음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높이시며, 모든 입이 그분을 주로 고백하게 하신다. 영광의 왕을 고백하는 교회는 자기 백성을 살리려고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의 낮아지심을 배운다. 사도행전 1:9-11의 승천과 히브리서의 하늘 성소 입장은 구원을 이루신 아들의 높임과 중보를 증언한다. 성도는 그분의 다스리심에 응답하며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고린도전서 15:20-28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원수를 복종시키고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폐하신다. 시편의 전쟁에 능하신 왕은 이 승리의 소망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승리를 믿는 교회가 다른 민족이나 반대자를 하나님의 원수로 몰아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에베소서 2:13-22의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목하게 하여 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시고, 성도들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세우신다. 요한계시록 21:1-4에서 그 임재는 눈물과 죽음이 사라지는 새 창조로 완성된다.

현대적 적용

땅과 거기 사는 이들이 여호와께 속한다면 재물이나 권한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 이웃의 생명과 수고도 하나님의 것이다. 창조주를 찬양하는 예배자는 재물을 얻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웃을 해치는 불의를 버려야 한다.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은 실제 행동과 동기의 진실함을 요구한다. 예배의 봉사와 헌금으로 거짓이나 부당한 이익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불의를 멈추고, 자신이 입힌 피해에 책임져야 한다. 정결은 가난이나 질병, 장애에 따라 사람을 가르는 잣대가 아니다. 시가 묻는 것은 손과 마음, 충성과 말의 진실함이다.

거짓 맹세 금지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운 말에도 적용된다.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주장하거나 신앙의 말로 거짓 약속을 정당화하면 그 이름을 욕되게 한다. 돈과 평판을 지키려고 진실을 버리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물어야 한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그분을 신뢰하며 말과 행실을 그분의 뜻에 맞추는 삶이다.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묻는 말씀 앞에서 죄를 숨기거나 기도를 미룰 필요는 없다. 죄를 씻고 새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그리스도의 희생과 중보를 의지하여 나아갈 수 있다. 구원의 하나님께 복과 의를 받는 사람은 잘못을 고백하고 삶을 바꾼다.

영광의 왕을 맞는 예배에서 지도자나 회중은 자신을 왕의 자리에 놓을 수 없다.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폭력과 모욕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왕을 찬양하는 바로 그 예배자에게 깨끗한 손과 거짓 없는 말이 요구된다.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시고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믿는 교회는 진실과 사랑으로 그분께 순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