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시편 21편은 20편과 같은 표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를 단다. BHS는 표제를 1절로 세므로 개역개정 21:1-13은 BHS 21:2-14에 해당한다. 시는 여호와의 힘으로 시작하고 같은 능력을 찬송하며 끝난다. 개역개정은 1절과 13절에서 같은 명사를 “힘”과 “능력”으로 달리 옮겼다. Robert G. Bratcher와 William D. Reyburn의 UBS 번역 해설은 두 곳을 같은 말로 옮겨 시 전체를 감싸는 반복을 살리라고 권한다.5 1-6절의 감사, 7절의 신뢰 고백, 8-12절의 승리 선언에 이어 13절에서 회중이 여호와를 찬송한다.
왕은 자신의 힘이 아닌 여호와의 힘과 구원 때문에 기뻐한다(1절). 히브리어는 “주의 힘으로”와 “주의 구원으로”를 각 행의 앞에 놓는다. 후반절은 “얼마나 크게 즐거워하는지요”라는 감탄이며, 개역개정은 이를 “크게 즐거워하리이다”로 옮겼다. 여기서 구원은 전쟁에서 얻은 승리를 포함한다. 표제가 다윗을 언급하지만 왕의 이름이나 전쟁은 밝혀지지 않아, 다윗 왕조의 다른 왕을 위해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다.
2절의 “마음의 소원”과 “입술의 요구”는 속으로 품은 바람과 입으로 드린 간구를 짝짓는다. “들어 주셨으며”는 문자적으로 “주셨다”는 말로, 4절에서 생명을 “주셨으니”라는 말과 같다.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의 부정어는 왕이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7절), 원수가 뜻을 “이루지 못하도다”(11절)에도 반복된다. 왕에게 주어진 응답과 안정이 원수의 실패와 대조된다. 끝의 “셀라”(סֶּלָה, 셀라)는 낭송이나 연주의 쉼 또는 전환을 표시한다고 흔히 이해하지만 정확한 뜻은 확정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왕을 “아름다운 복으로 영접”하고 머리에 순금 관을 씌우신다(3절). “영접하시고”(תְקַדְּמֶנּוּ, 테카데멘누)는 앞서 맞는다는 뜻을 담는다. 왕은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복을 받는다. 관을 “씌우셨나이다”의 동사는 뒤에서 왕을 복으로 삼고, 원수를 화덕 같게 하며, 돌아서게 하는 데 반복된다(6, 9, 12절). 사무엘하 12:30의 다윗이 얻은 금관이 전리품이었다면, 이 시의 관은 하나님이 왕에게 주신 권위를 드러낸다.
왕이 구한 생명에 하나님은 “영원한 장수”로 응답하신다(4절). 히브리어는 “날들의 길이, 영원히 또 영원히”(אֹרֶךְ יָמִים עוֹלָם וָעֶד, 오레크 야밈 올람 바에드)라고 노래한다. 이는 전장에서의 생존과 왕의 긴 날을 바라던 궁정의 언어와 통한다. 밧세바도 다윗에게 만세수를 빌었다(왕상 1:31). 시의 넘치는 표현에는 구한 것보다 넉넉히 주신 은혜가 담기며,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세우겠다는 약속(삼하 7:16)이 겹친다.
“주의 구원”이 왕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영광도 크게 한다(5절). 개역개정은 구원을 주어로 세웠지만, 히브리어의 뜻은 “주의 구원으로 그의 영광이 크다”이다. 하나님이 입히신 “존귀와 위엄”은 시편 104:1에서 하나님 자신의 위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왕의 위엄은 그에게 맡겨진 선물이다.
6절의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는 “그를 영원히 복들로 삼으신다”(תְשִׁיתֵהוּ בְרָכוֹת לָעַד, 테쉬테후 베라코트 라아드)는 구문이다. 왕은 복을 받아 다른 이에게 복이 되는 자리에 선다. 이는 아브람에게 주신 창세기 12:2의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지는 “주 앞에서”는 주의 얼굴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왕의 기쁨은 승리와 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데 이른다.
왕이 흔들리지 않는 근거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데 있고, 그를 붙드는 힘은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וּבְחֶסֶד עֶלְיוֹן, 우베헤세드 엘욘)에 있다(7절). 인자함은 언약 안에서 끝까지 신실하신 사랑이다. UBS 해설은 이를 여호와께서 왕을 크게 사랑하시는 행위로 풀 수 있다고 설명하며, “흔들리지” 않음을 힘에 밀려 왕좌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으로 풀이한다.2
8-12절이 부르는 “너”의 정체는 히브리어에 명시되지 않는다. 개역개정은 “왕의 손”, “왕을 해하려”라고 왕으로 해석한다. UBS 해설은 왕으로 보는 견해와 여호와로 보는 견해를 모두 소개한다. “네가 나타날 때”는 여호와께 어울리지만 9절 후반에 여호와가 3인칭으로 나오는 점은 왕을 지지하는 근거다. 왕으로 읽으면 복 받은 왕이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하고, 여호와로 읽으면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신다. “손”과 “오른손”이 원수를 “찾아낸다”는 말은 붙잡는다는 뜻이다.3
원수는 “풀무불 같게” 된다(9절). UBS 해설은 여기의 화덕을 굳은 진흙이나 벽돌로 만든 것으로 설명한다. “노하실 때에”의 문자적 표현은 “네 얼굴의 때에”(לְעֵת פָּנֶיךָ, 레에트 파네카)로, 진노한 임재를 가리킨다. “너”가 여호와라면 6절에서 왕을 기쁘게 한 얼굴이 원수에게는 심판이 된다. 이어 여호와가 원수를 삼키시고 불이 그들을 소멸한다. UBS 해설은 화덕, 삼킴, 불이 먹어 치움으로 이어지는 세 행이 심판의 강도를 높인다고 설명한다.4
10절의 “후손”과 “자손”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열매”와 “그들의 씨”이며, 자손을 가리키는 은유다. “땅에서” 끊는다는 말은 멸망의 철저함을 나타낸다.4 왕조가 바뀔 때 앞 왕의 집안이 멸절된 열왕기상 15:29의 역사에서 보듯, 후손의 단절은 적대 세력이 다시 일어날 미래까지 끊는다는 뜻을 지녔다. 시는 이 두려운 심판을 여호와의 진노에 돌린다.
심판의 이유는 원수가 왕을 해하려 악을 꾸몄기 때문이다(11절). “왕을 해하려”의 히브리어는 “너를 향하여”여서 8절부터 이어지는 대상의 두 해석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미 꾸민 음모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는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시편 2:1-2의 군왕들을 떠올리게 한다.
원수는 활시위 앞에서 등을 돌려 달아난다(12절). “돌아서게 함이여”는 문자적으로 “그들을 어깨로 삼으리라”(תְּשִׁיתֵמוֹ שֶׁכֶם, 테쉬테모 셰켐)라는 표현이다. 왕의 머리에 관을 둔 동사가 여기서는 원수를 패주시키는 데 쓰인다. 6절과 9절의 얼굴에 이어 원수의 얼굴이 화살의 과녁이 된다.
13절에서 회중은 여호와께 “높임을 받으소서”(רוּמָה, 루마)라고 노래한다. UBS 해설은 이를 능력으로 위대하심을 나타내 달라는 간구, 능력 때문에 높임을 받으신다는 찬양, 또는 “일어나소서”로 옮기는 번역을 소개한다.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의 두 동사는 “우리가 노래하자, 찬송하자”라는 결심도 담는다. 찬송의 대상인 주의 권능은 하나님이 이루신 능한 일이나 승리를 뜻한다.5 왕의 승리를 기뻐한 백성은 마지막에 여호와의 능력을 높인다.
성경신학적 통찰
시편 20편의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20:9)라는 간구는 21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감사로 이어진다. 20:5의 “너의 승리”와 21:5의 “주의 구원”은 히브리어에서 같은 형태다. 앞에서는 왕에게 기대한 승리를 말하고, 뒤에서는 그것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20:7의 히브리어에는 “의지하다”가 생략되어 있지만 21:7은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명시한다. 특정 전쟁을 밝히지 않는 두 시는 위기 때의 공동 간구와 응답 뒤의 감사를 잇는다.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과 왕위를 견고하게 세우고, 죄를 징계하더라도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시편 21:4의 영원한 날과 7절의 인자함은 이 약속과 통한다. 그러나 시편 89:38-39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관이 땅에 떨어졌다고 탄식한다. 불순종한 왕들과 바벨론 포로기를 거친 이스라엘에게 시편 21편은 지난 승리의 기억이며, 언약을 이루실 왕을 기다리는 노래가 되었다.
신명기 17:14-20의 왕은 병마와 은금을 늘리거나 형제 위에 교만해지지 않고, 율법을 읽어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한다. 시편 21편의 관과 긴 날도 왕이 스스로 확보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고 부와 영광까지 받았으며(왕상 3:11-14), 히스기야는 기도하여 십오 년을 더 살았다(왕하 20:1-6). 하지만 솔로몬은 다른 신들을 따랐고 히스기야도 죽었다. 왕정의 실제 역사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영원히 사는 왕에 대한 시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고 구원이 칼과 창에 달리지 않았다고 선언했다(삼상 17:45-47). 시편 21:8-9에서도 왕의 손과 여호와의 진노가 원수의 패배를 설명한다. 8-12절의 “너”를 누구로 읽든 승리를 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그래서 왕을 위한 노래가 하나님의 권능을 찬송하며 끝난다.
시편 2편의 군왕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왕에게 구하라고 명하신다(2:1-8). 생명을 구해 받은 시편 21편의 왕과 뜻을 이루지 못한 원수도 같은 관계에 놓인다. 시편 2:12의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해당 낱말을 아람어 “아들”로 읽은 번역이다. UBS 해설은 본문을 달리 읽어 “그의 발에 입맞추라”, “그에게 경의를 표하라”로 옮기는 번역도 소개한다.1 시편 21편이 심판을 노래한다면, 2편은 대적에게 경의를 표하고 여호와께 피할 기회도 알린다.
하나님의 얼굴은 왕에게 기쁨이며 원수에게 진노다(21:6, 9). 민수기 6:24-26에서 얼굴을 비추심은 은혜와 평강이고, 시편 34:16(BHS 34:17)에서는 악인의 자취를 끊는 심판이다. UBS도 후자를 21:9의 진노한 임재와 연결한다.4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 없이 올라가지 않겠다고 기도했듯이(출 33:14-15), 승리와 왕위가 주는 복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에 이른다.
아브람을 복이 되게 하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를 심판하겠다는 약속(창 12:2-3)은 복을 받은 왕과 그 대적의 운명에도 비친다(21:6, 8). 시편 110:5의 진노와 말라기 4:1(BHS 3:19)의 용광로 같은 날은 21:9-10의 불과 철저한 멸망에 상응한다. 아모스 2:4-5는 같은 불을 유다에게 경고한다. 혈통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지 않는다.
시편 72:17은 왕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 받기를 기도하고, 이사야 9:6-7(BHS 9:5-6)은 다윗의 왕좌에서 정의와 공의로 영원히 다스릴 왕을 약속한다. 시편 21편의 왕도 백성을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받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신약은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서 그 영원한 나라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한다.
기독론적 해석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죽었고 다윗의 왕위도 포로기에 끊어졌다. 바울은 다윗이 죽어 썩음을 당했지만 하나님이 살리신 예수는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고 선포한다(행 13:36-37). 시편 21편의 영원한 생명과 흔들리지 않을 왕에 대한 기대를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읽는다. 누가복음 1:32-33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하나님께 다윗의 왕위를 받아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리라고 알린다.
예수는 아버지를 끝까지 신뢰하셨다. 히브리서 2:13은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는 고백을 그의 입에 둔다. 예수는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고(요 8:29), 욕과 고난에 보복하지 않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맡기셨다(벧전 2:23). 죽음 앞에서도 자기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다(눅 23:46). 이 신뢰의 길 끝에서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다.
왕의 간구를 들으신 시편 21:2, 4의 하나님께 예수도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히 5:7). 겟세마네에서 잔이 지나가기를 구하면서 아버지 뜻에 자신을 맡기셨고(마 26:39),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히브리서의 “들으심”을 부활과 연결하면 응답은 죽음을 이긴 생명으로 나타난다. 다시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롬 6:9)에게서 시의 “영원히 또 영원히”는 끝없는 생명에 이른다.
시편 21편 다음에는 응답 없는 부르짖음으로 시작하는 22편이 놓인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자는 그 신뢰 때문에 조롱받는다(22:4-8). 예수도 십자가에서 같은 조롱을 듣고 22:1의 말로 부르짖으셨다(마 27:43, 46). 시편 21:3의 순금 관에 앞서 예수는 조롱의 가시관을 쓰셨다(마 27:29). 22편이 응답과 열방의 예배로 나아가듯이(22:21, 27-28), 예수의 죽음은 부활과 열방을 향한 복음으로 이어진다.
사도행전 13:23-37은 죽임당한 다윗의 후손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일을 약속의 성취로 선포한다. 4:25-28의 교회도 시편 2:1-2를 인용하며 예수를 대적한 자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구원 뜻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2:25-33에서 베드로는 시편 16편으로 예수의 부활과 주 앞의 충만한 기쁨을 설명한다. 시편 21:6의 임재 앞 기쁨도 높임 받으신 왕 안에서 온전히 누려진다.
예수는 죽음의 고난을 거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히 2:9). 빌립보서 2:8-11에서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을 하나님이 높이시고, 만물이 그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 왕의 영광이 하나님 찬송으로 끝나는 시편 21편과 통하는 흐름이다. 요한계시록 19:12, 16의 만왕의 왕은 많은 관을 쓰신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심판을 폐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9:11-15의 왕은 공의로 심판하며, 데살로니가후서 1:7-8은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예수의 심판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원수인 사망까지 멸하신다(고전 15:25-26). 그러나 부활하신 왕의 이름으로 먼저 죄 사함이 선포된다(행 13:38-40). 예수는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셨고(눅 23:34), 주는 회개를 기다리며 오래 참으신다(벧후 3:9). 심판의 경고를 듣는 대적에게도 지금 돌아올 길이 열려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 15:57). 시편 21:13의 회중처럼 왕의 승리를 선물로 받아 노래하며, 보좌에 앉으신 이와 죽임당한 어린 양을 찬송한다(계 5:11-13). 항상 살아서 백성을 위해 간구하시는 왕(히 7:25)은 이기는 자를 자기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계 3:21). 백성이 누리는 영광도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다.
현대적 적용
왕의 소원을 들으시고 생명과 관을 주신 하나님께 회중은 감사한다. 이 시를 기도하는 성도도 응답을 자신의 수완이나 공로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왕의 안정은 군사력이나 재물이 아닌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달렸다. 권위를 맡은 사람은 형제 위에 교만해지지 않고 말씀 아래 살아야 한다는 신명기 17장의 요구를 받는다.
생명을 구하는 기도는 정당하다(4절). 그러나 수명의 길이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순교자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 시편 21편의 감사 다음에 22편의 탄식이 있고,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를 면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았다. 성도는 구원을 감사하면서도 아직 응답을 기다리는 탄식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조차 하나님의 마지막 응답을 막지 못한다는 소망이다.
불과 활시위와 후손의 멸절을 노래하는 8-12절에서 심판의 권한은 여호와께 있다. 로마서 12:19-21은 원수를 스스로 갚지 말고, 주린 원수를 먹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명한다. 악을 당한 사람은 사실을 밝히고 정당한 보호를 구하면서도, 보복으로 상대나 그 가족을 해칠 권리를 이 시에서 얻을 수 없다. 심판을 맡기고 회개를 구하는 기도는 악을 숨기거나 피해를 감수하라는 요구와 다르다.
시편의 왕을 특정 국가나 정당의 지도자와 동일시하면 그리스도께 속한 자리를 인간 권력에 넘겨주게 된다. 교회는 자신이 지지하는 편의 승리를 하나님의 승리로 선포하기보다 모든 위정자를 위해 기도한다(딤전 2:1-2). 박해 앞에서는 초대 교회처럼 복음을 전할 담대함을 구한다(행 4:29). 권력을 얻었을 때에는 약자를 해치는 음모의 편에 서지 않아야 한다.
왕이 받은 마지막 복은 주의 얼굴 앞에서 누리는 기쁨이다(6절). 실패나 상실로 관을 잃었을 때에도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시편 89편처럼 상실을 탄식할 수 있고, 시험을 견디는 자에게 주신 생명의 면류관을 기다릴 수 있다(약 1:12). 옥중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 권한 바울(빌 4:4)처럼, 그 기쁨은 성취의 크기보다 살아 계신 주께 뿌리를 둔다. 회중은 자신이 얻은 영예를 높이는 대신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를 찬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