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분석
시편 20편은 전쟁에 나가는 왕을 위한 공동체의 기도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는 BHS에서 20:1이므로 개역개정 20:1-9는 BHS 20:2-10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개역개정의 절 번호를 따른다. 표제의 “다윗의”는 다윗이 지었다는 뜻으로도, 다윗과 그의 왕가에 속한 시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어느 쪽이든 기도의 중심에는 다윗 계열의 왕이 있다.
1-5절에서 백성은 왕을 “너”라고 부르며 기도한다. 6절에서는 한 화자가 “내가 아노니”라고 확신하고, 7-9절에서는 “우리”의 고백과 간구가 이어진다. 성소와 시온, 소제와 번제는 출전 전 예배를, 깃발과 병거와 말, 엎드러짐과 일어섬은 전쟁을 가리킨다. 특정 왕이나 전쟁을 지목할 정보는 없다. 이어지는 시편 21편은 여기서 구한 구원을 감사하는 노래다.
“응답하시고”(יַעַנְךָ, 야안카)는 미래 서술로도 읽을 수 있지만, 1-5절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왕을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환난 날”은 적에게 압박받는 위기의 때이며, “높이 드시며”는 적이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 두어 보호해 달라는 뜻이다. 회중이 부르는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에는 환난 날에 야곱에게 응답하시고 그가 가는 길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담긴다(창 35:3).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가리키며, 1절과 5절, 7절을 잇는다.
2절의 도움은 성소와 시온에서 온다. “붙드시며”라는 간구는 왕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달라는 뜻으로, 8절의 “바로 서도다”에 이어진다. 성전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은 거룩한 하늘에서 응답하신다(6절). 솔로몬도 백성이 전쟁에 나가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시기를 구했다(왕상 8:44-45). 성소는 하나님을 가두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이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곳이다.
3절에서 회중은 왕이 드린 소제와 번제를 기억하고 받아 주시기를 구한다. “받아 주시기를”(יְדַשְּׁנֶה, 예닷셰네)은 기름지고 풍성하다는 뜻과 관련되어, 제물을 좋게 여기시기를 바라는 표현이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며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지만(삼상 7:9-10), 사울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번제를 드려 책망받았다(삼상 13:8-14). 제사는 전쟁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예배다. 절 끝의 “셀라”는 음악이나 예배와 관련된 말이며 정확한 기능은 알려져 있지 않다.
4절의 “네 마음의 소원대로”는 문자적으로 왕의 마음을 따라 허락해 달라는 기도다. 마음에는 바람뿐 아니라 생각과 판단도 포함된다. 이어지는 “모든 계획”은 출전을 앞둔 왕의 결정과 전략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아히도벨의 계략도 꺾으신 분이다(삼하 17:14). 회중은 왕의 소원과 계획을 하나님의 허락에 맡긴다. 4절과 5절에서 되풀이되는 “이루어 주시기를”은 채워 주고 성취해 주시기를 바라는 말이다.
5절에서 회중은 왕이 구원받으면 개가를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너의 승리”에 쓰인 말은 구원과 건짐을 뜻하며, 전쟁에서 왕이 얻을 승리를 가리킨다. 시편 21:1은 같은 구원을 하나님이 베푸신 것으로 노래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우는 백성은 왕의 운명에 자신들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안다. 절 끝에서는 왕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다시 구한다.
6절의 “이제 내가 아노니”는 간구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이 화자가 제사장인지 선지자인지 왕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구원하시는”(הוֹשִׁיעַ, 호쉬아)은 완료형으로, 앞으로 베푸실 구원을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확신한다. “기름 부음 받은 자”(מְשִׁיחוֹ, 메쉬호)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다(삼상 10:1; 16:13). 1절에서 구했던 응답을 이제는 하나님이 왕에게 베푸실 일로 고백한다. 구원하는 오른손의 힘은 바로의 군대를 꺾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떠올리게 한다(출 15:6).
7절의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에는 히브리어 동사가 따로 없다. 문장 끝의 “자랑하리로다”(נַזְכִּיר, 나즈키르)가 앞의 두 무리와 “우리”에 공통으로 걸린다. Robert G. Bratcher와 William D. Reyburn의 UBS 해설은 이를 승리의 근거로 무엇을 언급하며 자랑하거나 의지하는 뜻으로 풀이하고, 신뢰를 담은 “부르다”가 적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칠십인역과 시리아어 역본에 기대어 “우리는 강하다”로 읽는 본문 수정 제안도 있다. Dahood는 이 동사를 ‘남자’와 관련된 말에서 이끌어 ‘강하다’로 풀이한다. 개역개정은 한 동사를 앞에서는 “의지하나”, 뒤에서는 “자랑하리로다”로 나누어 옮겼다. 병거와 말의 군사력에 기대는 사람들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회중이 대조된다.1
8절의 “그들”은 7절에서 병거와 말을 의지한 사람들이다. “엎드러짐”은 패배를, “일어나 바로 섬”은 승리를 나타내며 앞 행동을 뒤집는다. 히브리어는 과거형으로 이 장면을 그리지만, 출전을 앞둔 시의 흐름에서는 앞으로의 승리를 확신하며 노래하는 표현이다. 2절에서 왕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한 회중은 이제 자신들도 하나님께 붙들려 서리라고 고백한다.1
9절은 “여호와여 구원하소서”(הוֹשִׁיעָה, 호쉬아)라는 명령형 간구로 돌아간다. BHS의 구분 악센트는 이 말 뒤에서 끊어 “왕”(הַמֶּלֶךְ, 함멜레크)을 다음 구절과 잇는다.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를”(יַעֲנֵנוּ, 야아네누)은 3인칭이므로 “왕이 우리가 부르는 날에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를”로 읽을 수 있다. 이 왕을 지상의 왕으로 볼 수도, 하나님으로 볼 수도 있다. UBS 해설이 소개하는 Hebrew Old Testament Text Project는 구절 경계와 왕의 지시 대상에 따라 네 가지 읽기를 제시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곧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왕이 응답하시기를”에서 왕을 사람 또는 하나님으로 읽는 두 해석과,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그가 응답하시기를”에서 응답의 주체를 왕 또는 하나님으로 읽는 두 해석이다. 여러 번역은 칠십인역과 타르굼, 히에로니무스의 번역을 따라 하나님께 직접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간구한다. 개역개정도 왕의 구원과 회중의 응답을 구하는 두 간구로 옮겼다. 여기서 응답은 요청을 듣고 실제로 도와주시는 일이다.2
처음의 “환난 날”은 마지막의 “우리가 부를 때”와 맞물린다. 왕을 향한 “너”는 왕을 두고 말하는 “그”를 거쳐 백성의 “우리”로 이어진다. 회중은 확신을 고백한 뒤에도 다시 구원을 구한다. 왕과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은 그들이 이름을 부르는 여호와다.
성경신학적 통찰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군대 앞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구하는 기도는 출애굽의 기억을 따른다. 출애굽기 14:10-31에서 이스라엘은 바로의 병거를 보고 두려워했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셨다. 바다를 건넌 백성은 여호와가 말과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노래하고, 원수를 부수신 오른손을 찬양했다(출 15:1, 6). 홍해 앞의 백성은 서서 구원을 보았고, 시편 20편의 군대는 전장에 나간다. 두 본문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여호와다.
신명기 17:14-20은 왕이 말을 많이 두거나 말을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율법을 읽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형제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한다. 신명기 20:1-4에서는 적의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아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제사장은 전쟁에 나가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가시며 싸워 구원하신다고 선포한다. 시편 20편의 회중은 그 약속을 의지하며 왕을 위해 기도한다.
이 신뢰는 이스라엘 왕들의 군사 정책도 심판한다. 솔로몬은 병거와 말을 모으고 애굽에서 말을 들여왔다(왕상 10:26-29). 이사야 31:1-3은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한다. 애굽은 사람이고 그 말들은 육체이므로, 여호와가 손을 펴시면 돕는 자와 도움받는 자가 함께 넘어진다. 호세아 14:3의 회개도 앗수르의 구원과 말을 타는 일을 버리겠다는 고백을 포함한다. 시편 20:7-8의 경계는 이스라엘의 원수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다윗이 골리앗을 맞설 때에도 무기와 하나님의 이름이 대조된다(삼상 17:41-52).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다윗은 자신이 쓰는 물매가 아니라 여호와께 구원이 달려 있다고 고백했다. 골리앗이 쓰러지자 이스라엘 군대가 일어나 추격했다. 아직 왕이 되지 않은 다윗의 고백을, 시편 20편에서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위해 기도하는 온 백성이 자기들의 고백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백성은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알리신 은혜에 의지한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13-15에서 모세에게 이름을 알리시고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게 하셨다. 아말렉과 싸운 뒤 모세는 제단을 “여호와 닛시”라 불렀다(출 17:15). 그곳의 ‘깃발’과 시편 20:5의 동사는 서로 다른 히브리어지만, 백성이 여호와를 의지하여 모인다는 뜻에서 연결된다. 잠언 18:10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인이 달려가 안전을 얻는 견고한 망대로 부른다.
성소와 하늘을 향한 기도는 왕들의 위기에서도 이어진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보낸 위협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했다(왕하 19:3, 14-23). 많은 병거를 자랑하던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하고 돌아갔다(19:36). 여호사밧도 성전 뜰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백성은 전장에 나가며 여호와를 찬양했다(대하 20:5-22). 시편 20편처럼 백성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노래했다.
시편 2편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은 하나님이 시온에 세우신 왕이다(2:2, 6). 하나님은 그에게 구하면 나라들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시고(2:8), 그에게 피하는 사람의 복을 선언하신다(2:12). 시편 20편에서는 백성이 그 왕을 위해 실제 환난 가운데 기도한다. 시편 21편에서는 왕이 여호와의 구원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이 그의 마음의 소원과 입술의 요구를 이루어 주셨다고 감사한다(21:1-2). 시편 20:4-5의 간구가 감사로 이어지며, 왕도 여호와를 의지한다(21:7).
왕을 위한 기도에는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이 놓여 있다(삼하 7:12-16). 왕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부른 말에는 왕의 운명과 백성의 삶이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삼하 21:17). 그러나 다윗 왕조는 바벨론에 무너졌고 성전도 불탔다. 예레미야애가 4:20은 백성의 생명처럼 여겼던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붙잡혔다고 탄식한다. 현재의 왕을 위한 기도는 왕조의 실패를 겪으며 약속을 온전히 이룰 왕을 기다리는 기도로 이어진다.
스가랴 9:9-10은 시온에 임하는 왕을 공의롭고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는 왕으로 그린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으시며, 그 왕은 이방에 화평을 선포한다. 시편 20편에서 병거와 말보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던 백성은, 이제 병거와 말을 끊으시는 왕의 통치를 바라본다.
기독론적 해석
시편 20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본래 전쟁에 나가는 다윗 왕조의 왕이다. 그 왕들은 모두 죽었고, 왕조는 끝내 무너졌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을 기다리던 소망에 예수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분으로 나타나셨다.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1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다(눅 4:18-21). 베드로도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증언한다(행 10:38). 신약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칭호다.
예수는 스가랴 9:9의 말씀을 따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마 21:4-5). 무리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21:9). 호산나는 시편 118:25의 “구원하소서”라는 간구에서 나온 말이다. 시편 20:9의 회중처럼 무리도 다윗의 자손을 맞으며 구원을 외쳤다. 그 왕은 며칠 뒤 로마 권력 앞에서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셨다. 병거와 말을 끊는 왕은 자기 몸을 내어 주셨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는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할 수만 있다면 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면서 자기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구하셨다(마 26:38-39). 시편 20:4에서 백성은 왕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구했다. 예수는 자기의 소원을 아버지의 뜻 아래 두셨고, 그 순종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다.
제자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쳤을 때 예수는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구하면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실 수 있으나, 그는 성경을 이루는 길로 붙잡히셨다(마 26:51-54). 빌라도 앞에서도 자기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종들이 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요 18:36). 병거와 말 대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신뢰는, 하늘의 군대를 부를 수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왕에게서 온전히 나타난다.
히브리서 5:5-7은 시편 2:7의 아들 선언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그가 심한 통곡과 눈물로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간구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말한다. 아들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고난을 받으며 순종함을 배우셨다(5:8-9). 하나님은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24, 36). 시편 20:6에서 확신하는 기름 부음 받은 왕의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죽음을 통과하는 부활로 이루어진다. 왕이 구한 생명을 영원히 주셨다는 시편 21:4의 소망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다.
시편 20:3의 왕은 소제와 번제를 드리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엡 5:2). 단번에 드리신 몸의 제사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으며, 그 한 제사는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한다(히 10:10-14).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그 제사를 받으셨음을 드러내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스도가 이기신 원수는 사람을 묶어 두던 죄와 죽음의 권세다. 그는 십자가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셨고(골 2:15),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시며 죽음의 두려움에 매였던 사람들을 놓아 주셨다(히 2:14-15).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고 일으키셨다(엡 2:5-6). 시편 20편에서 왕의 승리를 백성이 기뻐하듯, 교회는 왕의 승리에 참여하여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주시는 승리를 감사한다(고전 15:54-57).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은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로 이어진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롬 10:9-13). 베드로는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고 증언한다(행 4:12). 하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 2:9-11). 교회는 그 이름 아래 모이고, 예수가 가르치신 대로 그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한다(요 16:23-24).
시편의 백성이 성소를 향해 하늘의 응답을 구했다면, 교회는 하늘 성소에서 섬기시는 대제사장을 의지한다(히 8:1-2).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다(히 4:14-16). 백성의 기도를 받던 왕과 달리, 이 왕은 백성을 위해 간구하신다. 예수는 베드로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셨고(눅 22:31-32), 제자들과 그들의 말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다(요 17:9, 20). 지금도 항상 살아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해 간구하신다(히 7:25; 롬 8:34).
히브리서 5:9-10은 온전하게 되신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나님께 대제사장으로 칭함을 받으셨다고 말한다. 시편 20편에서 왕의 구원은 백성의 기쁨이었다. 교회는 들으심을 얻은 아들과 그가 이루신 구원을 의지하여 환난 중에도 기도하며, 그 승리가 온전히 드러날 날을 기다린다.
현대적 적용
회중은 왕의 환난과 예배, 소원과 계획을 위해 기도한다. 바울도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한다(딤전 2:1-2). 지도자를 위한 기도에는 그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아래 두는 일이 따른다. 신명기 17장의 왕처럼 지도자도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회중은 지도자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구하지 않고,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도록 기도한다.
3절은 하나님이 제사를 기억하고 받아 주시기를 구한다.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사울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번제를 드려 책망받았다(삼상 13:8-14). 예배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계획까지 하나님께 맡긴다. 그리스도가 겟세마네에서 자기 소원을 아버지의 뜻 아래 두신 순종이 우리의 기도를 이끈다.
병거와 말은 승리의 근거로 자랑할 만한 군사력이었다. 오늘의 교회도 재정과 규모, 영향력을 구원의 근거로 내세울 수 있다. 다윗은 물매를 사용하면서도 구원이 여호와께 속한다고 고백했고, 잠언 21:31은 싸울 날을 위해 마병을 준비하되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고 말한다. 준비한 수단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대신할 때, 회중은 자신이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6절의 확신 뒤에도 9절의 간구가 이어진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직 응답받지 못한 것을 계속 구할 수 있다. 예수도 고난 중에 간구하여 들으심을 얻으셨으며,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시편의 승리를 근거로 믿는 사람은 반드시 원하는 방식으로 고난을 벗어난다고 약속할 수 없다. 교회는 이미 들으심을 얻으신 아들을 의지하여 회복을 구하고, 기다리는 중에도 아버지께 자신을 맡긴다.
왕과 백성의 연대는 군사력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기도의 왕을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교회는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하신 왕의 명령을 따른다. 나라의 안전과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략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으며, 평화를 이루는 일에 힘쓴다.
5절의 회중은 왕의 구원을 자신들의 기쁨으로 노래한다. 교회도 한 몸이므로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한다(고전 12:26). 그 기쁨의 근거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졌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 있다. 환난 중에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는 지금도 자기 백성을 위해 간구하시는 왕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